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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구대에 다녀간 기록을 남기다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5-04-08 19:03 게재일 2025-04-0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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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암각화박물관으로 떠난 봄 야유회<br/>반구대 암각화 관련 그림·문양 고스란히<br/>7000년 전 중요한 문화 유산·정보 전시

포항수필사랑 회원들과 울산으로 봄 야유회를 갔다. 세계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발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골짜기로 굽어 들어가니 외형부터 특이한 울산암각화박물관이 엎드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큰 고래가 몸을 휘며 동해에서 태화강으로 거슬러 올라 이곳 대곡천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뒷문에서 바라보면 고래의 꼬리가 퍼덕이며 유영하는 듯하다.

안으로 우리 일행이 들어가니, 해설사가 반갑게 맞았다. 책이나 자료에서 알려주지 않는 생생한 전설을 듣고 싶어 바싹 따라가며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암각화가 37개 발견됐다고 한다. 7000년 전의 바위 낙서와 3000년 전 문양이 이곳에 있다고 했다. 1970년 12월 24일 울주지역 불교 유적 조사를 진행 중이던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반고사 터를 찾기 위해 반구대를 방문하였다.

이때 마을 주민의 제보로 천전리 각석을 발견하여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암각화가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듬해 1971년 12월 25일 천전리 각석을 답사하다가 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아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하였다. 쪼기, 갈기, 긋기, 돌려파기 방법으로 고래와 같은 바다 동물과 호랑이, 사슴 같은 육지 동물, 동물 사냥과 고래잡이 과정 등 선사시대 사냥과 해양 어로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특히 동물 그림은 생태적 특징을 매우 상세하게 표현하고 고래, 거북, 바다사자, 새, 상어, 물고기, 사슴, 멧돼지, 호랑이, 표범, 담비, 늑대 등 20여 종의 동물을 구분할 수 있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고래사냥 과정 중 고래를 자세히 관찰하는 탐색의 결과로 고래 종과 습성 등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래의 종류는 분기(分岐) 형태, 머리와 입의 모양, 몸통의 형태, 가슴지느러미와 꼬리 등의 특징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고래는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향고래, 들쇠고래, 범고래, 상괭이로 최소 7종이다.

대곡리 암각화 암면의 상단부는 2~3m 정도 처마처럼 튀어나와 자연적인 바위 그늘을 만들어 비바람으로부터 암각화를 보호한다. 암면은 북서쪽을 향하고 있어 3~11월 오후 3~5시 사이 햇빛이 들어오면 그림이 더욱 뚜렷하고 입체적으로 보인다. 두 바위 면은 크고 판판하며, 자연적으로 절벽에 그늘이 생기는 구조와 소리 울림 현상이 있어 신성하게 여겨 그림을 새겼을 것이다.

남겨진 그림과 문자는 신석기 시대부터 제작이 시작되어 신라시대까지 암각 제작 전통이 이어진 유산의 증거이다.

암각화가 수천 년간 이어져 제작되는 동안 기존의 그림을 피해 남겨졌다는 점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앞 작품을 인지해가며 그들의 문화를 그림과 문자를 누적하여 새긴 결과 현재와 같은 구도를 갖추게 되었다. 천전리 암각화에는 끝이 뾰족한 금속 도구로 신라시대에 새겨진 문자가 총 127점 확인된다. 문자는 중국의 표의문자인 ‘한자(漢字)’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문자에서 10행이 넘는 장문의 문자까지 다양하게 확인된다. 문자의 구성 방식은 언제, 누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주로 기록하였다. 특히 신라 법흥왕 대 명문이 새겨져 있어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널따란 바위에 자리를 깔고 물고기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먹으며 계절을 보냈다하니 지금의 우리도 그 앞에 자리를 펴고 싸 온 간식을 펼쳤다. 새콤달콤한 딸기를, 호박시루떡을 돌리고, 폭신한 빵을 권하고, 쓴 커피 달디단 커피 골라 먹으며, 강구에서 사 온 타우린 달걀을 목 막히지 않고 먹었다.

그리고 그들이 여기 있었다는 기록을 바위에 새겼듯 우리도 우리 시대의 기록인 스마트 폰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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