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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을 기다리며

등록일 2025-03-31 18:47 게재일 2025-04-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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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문학연구자
허민 문학연구자

2024년 12월 3일 밤을 기억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그 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묵혀뒀던 ‘흑백요리사’ 다섯 편을 몰아보고 있었다. 새벽 2시 즈음 이제 잠이나 자볼까 하고 핸드폰을 보고 나서야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카톡창에 떠 있는 백여 개의 메시지들, 앞다퉈 발표되는 뉴스 속보, 담을 넘는 국회의원, 국회의 유리창을 깨는 군인과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들. 순간 나는 내가 다른 시간대로 혹은 다른 세계관으로 ‘워프’된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당신들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나는 한국근현대문학을 공부했고, 식민 지배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중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엄령이 인지됐을 때 내 몸은 얼어붙었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할지, 친구들의 안위를 물어야 할지, 어딘가로 대피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어야 할지 분명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나름 연구자라며 그렇게 많이 읽고 쓰곤 했는데 저항에 관한 서사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보았다. 총기를 무장한 채 동원된 군인들과 맞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대체 저들의 용기는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국회를 향해 어떻게 자기 몸을 이끌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장갑차를 온몸으로 막은 저 청년은 대체 누구일 수 있는 걸까. TV를 보고 마냥 놀라고만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만큼, 계엄군을 마주하며 인간 바리케이트를 형성하고 있는 저들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모두 들었다.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의 목소리를. 저이가 말하는 ‘종북’과 ‘반국가세력’은 야당을 뜻했던 것일까? 그래도 대략 국민의 절반 정도가 지지하는 정당일 텐데, 설마 국군통수권자가 군사력을 동원해서 잡아들이려고 할 수 있는 건가. 여전히 믿기지가 않지만, 믿고 싶지 않은 장면과 소리를 이미 너무나 많이 보고 들어버린 것 같다.

탄핵이 기각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단 모두가 2차 계엄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혹자는 현실적으로 2차 계엄이 발동될 리 없다고 말한다. 군인과 경찰들이 더이상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들이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건 옳지 않은 일에 대한 정의감과 두려움, 자기 판단에 대한 신뢰 덕분이었을거다. 하지만 헌재에서 비상계엄이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대체 군인들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항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 죽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는 괜찮다는 건가? 국회를 군인들이 봉쇄해도 문제없다는 건가? 계엄 정도는 그냥 넘어가지는 건가? 대통령 권한의 악의적 남용에 눈 감고 대체 어떤 미래를 모색하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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