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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대

등록일 2025-03-06 19:49 게재일 2025-03-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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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철수필가
노병철 수필가

“아메카노로 주시고요 따뜻하게 원샷으로 부탁드립니다.” 커피 주문을 하는데 앞에 여자가 한 말이다. 무슨 소리 하는지 잘 못 알아들었다. 대충 마시면 될 것을 무슨 서양 음식 먹으러 온 식당에서처럼 “뭐 넣고 뭐 빼고 해서 주세요”하는 식으로 주문한다. 꽤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까탈스럽게 보였다. 어른 말대로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최고의 맛은 개인의 특별한 취향에 맞는 맛이다.” 그렇다고 자기 취향에 맞게 주문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동태탕 먹는데 파 빼고 무 빼라면 그 집에서 그렇게 끓여 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런 주문이 가능하고 종업원들도 이런 주문에 더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카푸치노를 주문하면서 탈지분유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 준다는 것이다. 왜 카푸치노에 탈지분유를 넣어야 하는지 이해 가지 않지만 그렇게 마셔야겠다는 독자적 취향을 맞춰준다는데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린 이런 손님을 ‘진상’으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맛있다고 하면서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최고의 맛이다.” 우린 개인의 특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튀는 놈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고상한 척한다며 따돌림받기 일쑤이고 “마카다 짜장면”에 익숙한 우리 문화는 혼자 튀는 것을 철저히 부정한다. 우리의 전통은 까라면 까야 하는 획일성에 기초한다. 이 전통은 예와 효에 근거한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절대 대들면 안 되고 상급자에게, 선배에게는 항상 복종해야 하는 문화이다. 그래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너는 아비 어미도 없나”라는 말이다. 개인보다는 철저하게 단체나 조직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저는 회를 못 먹어요.” 이제 세상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자신의 취향이 존중받는 세상이 온 것 같다. 직장 회식을 가자고 하면 회를 못 먹어서 이번 회식엔 빠지겠다고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그냥 따라와서 튀김이나 몇 개 먹어주는 배려 따위는 기대하기 힘들다. 자기주장이 정말 뚜렷하다.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가치 기준이 너무나 명확하다. 여기에서 기성세대들과의 마찰이 발생한다. 나와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을 ‘이기적’이라고 표현하는데 마다하지 않는다. 더불어 살기에 우리네 교육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언제부터인지 내 머리엔 ‘일사불란’이란 단어가 아주 깊숙이 꽂혀있다. 내가 명령을 내리면 그대로 따라와야지 반기를 들거나 어영부영하고 있으면 가차 없이 그 대가를 치르게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요즘 하다간 노동부에 끌려가 아주 된통 당하고 말 것이다. 의견이 다른 것에 대해 귀 기울이고 소수자로 불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뭔가 특별함을 인정해 주는 그런 사회가 왔다. 그래서 나이 든 분들이 혼란에 빠진다. 아직 충과 효에 빠져나오지 못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와 다름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나 혼자 거부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더불어 살기 위해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철저히 그네들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살아야 할 때이다. 지금은 개성시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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