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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공사

등록일 2025-05-15 19:12 게재일 2025-05-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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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철 수필가

관행(慣行)이란 말은 ‘오랜 기간 똑같이 하던 것들’이라는 의미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공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것을 억지로 꿰맞추며 이상한 짓을 할 때 붙이는 용어이다. 여직원이 커피 타는 것은 관행이라는 말을 대놓고 한 적도 있다. 이런 여직원이 커피 타려고 회사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면 여태 그런 관행에 익숙했던 사람들 눈엔 그 여직원은 완전 ‘또라이’로 보인다. 세상은 변하고 ‘페미’라는 새로운 단어가 익숙해진 요즘 그런 여직원이 있다면 여직원을 욕할까 아니면 커피 타라고 시킨 그 누구를 욕하게 될까.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곳에서 관행이란 미명 하에 이상하고 어색한 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 바닥이 원래 이래.” 공무원 회의하는 데 한번 가본 적이 있다. 고위공무원이 들어오면 갑자기 다 일어난다. 나도 덩달아 영문도 모르고 일어났다. 아마 조직의 어른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재판 구경을 가보면 기가 막힌다. 판사 들어오면 다 일어나야 한다. 여긴 일어나라고 말을 한다. 한번은 방청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는데 판사가 나를 째려보더니 자기 앞에서 다리 꼬지 말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런 관행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온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난 죄인이 아니다. 왜 판사 앞에서 다리 모으고 두 손 가지런히 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 듣고 싶다. 민주공화국에는 모든 권력자는 견제를 받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 바로 검사, 판사이다. 이들은 죄를 지어도 99% 기소를 당하지 않는다. 미국은 24시간 내 완전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판결문도 우리나라에선 겨우 0.3%밖에 밝히지 않는다. 이러니 판결이 판사 마음대로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그들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해야만 한다. 관행이다.

기자가 기사에 ‘핏짜, 커리’쓴다. 물론 허접한 잡지사 기자 나부랭이가 본배 없이 쓰는 것이다. 피자나 카레라고 글을 쓰면 밋밋해 보여서 그렇게 썼다고 항변할지는 모르지만, 외국어와 외래어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얼뜨기 기자이리라. 구제역이란 말도 마찬가지이다. 익산 춘포역이나 군위 화본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구제역은 입구(口), 발톱제(蹄), 돌림병역(疫)이다. 따라서 소나 돼지 등의 동물의 입이나 발굽에 생기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병을 가리켜 구제역이라고 쓰고 말한다. 가축들이 구제역에 걸리면 입의 점막이나 발톱 사이의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침을 흘리다 죽게 되는데 이게 전염성이 강하다. 상당히 위험한 병이기에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사람들이 쉽게 잘 알아듣지 못한다. ‘신병을 확보하다.’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군대에서 신병(新兵)이 새로 들어왔나 싶었다. 하지만 그 신병이 아니다. 범인을 잡았다는 이야기다. 신병(身柄)이란 말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도 못 봤다. 물으면 전부 얼버무린다. 자루 병(柄)자가 해석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알아먹지도 못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왜일까? 물어보니 이 바닥 관행이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제까지 관행으로 치부하고 이런 짓을 묵인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묻고 싶다. 날 잡아 바닥공사 제대로 한번 해야 할 판이다.

/노병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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