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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의 법칙

등록일 2025-03-03 18:37 게재일 2025-03-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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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을 파하고 급히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아찔하다. 차들은 바삐 오고 갔다. 아파트 옆 동 동생과 함께 저녁 산책을 다녀오며 무심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신호등을 찾았지만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호등이 있는 것처럼 계속 서 있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뒤로, 우리 옆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멈춰 서기 시작했다. 누군가 휴대폰을 보며 뒤따라 멈췄고, 이어서 유모차를 밀던 엄마도 정지선에 멈췄고, 손을 꼭 잡고 걸어오던 노부부도 멈췄다. 횡단보도는 그대로였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마치 당연히 기다려야 하는 장소가 된 것처럼.

나는 문득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떠올랐다. 작은 무질서가 방치되면 더 큰 무질서를 부른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거꾸로 누군가가 질서를 지키면 다른 이들도 따라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아도 때로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곤 한다. 누군가가 무단횡단을 하면 뒤따르는 사람들도 별다른 고민 없이 건넌다. 반대로 누군가 오늘처럼 멈춰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멈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작용하는 듯 했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전봇대에는 낙서가 많았다. 처음에는 작은 글씨 몇 개였는데 금세 키 큰 전봇대는 사람의 손이 닿는 모든 지점이 낙서로 뒤덮였다. 그 때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붓을 들고 페인트를 칠해 낙서를 지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의아해했지만 깨끗해진 전봇대는 의외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새로 낙서를 하는 아이들이 줄어든 것이다. 누군가 작은 질서를 만들어 놓으면 그 질서를 따르려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는 듯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단순히 멈춰 서 있었을 뿐인데 그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다려야 한다’는 신호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작은 변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조금 후, 차 한 대가 멈췄다. 신호등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지자, 운전자가 양보한 것이다. 그곳에 서 있던 사람들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자 모두가 건너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 앞에 또 새로운 사람이 서 있었다. 뒤에 또 다른 사람이, 그 뒤로 또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작은 행동이 가져 오는 변화, 질서를 깬 작은 요소가 혼란을 가져오듯 질서를 지키는 작은 행동도 조화를 만들 수 있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보이지 않는 신호처럼.

최근에 본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 카페에서 자리가 부족해지자 어떤 손님이 쓰레기를 테이블에 그냥 두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손님들도 자리를 정리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결국 카페 안은 금세 어질러졌고 직원이 치우기 전까지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유명한 카페라고 갔지만 정돈되지 않은 무질서에 시간 내어 찾아온 카페에 대한 불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신과 후회까지 밀려왔다.

긴 시간도 아니었고 찰나에 일어난 무질서였다. 작은 행동 하나가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무질서가 퍼지듯 질서와 배려도 전염된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는 대신 닦아내고 정돈을 시작하는 것, 지금 우리 주변에 가장 필요한 법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변화를 원하지만 정작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은 행동의 본질을 간과하곤 한다.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있다면 그림자를 본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대화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점점 그 공간은 질서를 갖춘 분위기로 변해가는 간다.

우리는 선순환의 시작점을 만드는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내딛는 한 걸음이 작은 변화가 되고 큰 바람을 일으킨다. 시간이 흐르면 긍정의 선택이 모여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낼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더 박살내고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으려는 시작점에 누군가는 또 서 있게 될 것이니까. /작가 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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