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충택 정치에디터의 관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여권 대선 주자들의 경쟁 구도가 드러나는 가운데, 최근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 19일 국회 소통관을 찾아 긴급기자회견을 하면서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며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 보수층을 겨냥한 메시지를 냈다. 그는 대선출마를 염두에 둔 회견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기자들은 사실상 대선주자로서 ‘보수적자’ 경쟁에 뛰어든 것으로 받아들였다. 기자회견 후 각 여론조사기관에서도 이번 주말부터 실시되는 향후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 이 지사를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의 기자회견문은 △사상누각의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부에서 진행되어 온 연성(軟性) 사상전 △시대과제 △국민의힘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온몸 던져야 등의 소제목으로 구성됐지만, 핵심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가 반국가세력에 의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는 현 탄핵정국을 대한민국 수호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충돌로 봤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은 계엄행위에 대한 적법성 판단이 아니라 반국가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은 국민의힘이 조기대선이나 중도 확장을 운운할 상황이 아니고 탄핵 심판으로부터 대통령을 지키는 일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는 게 이 지사의 지론이다. 그는 반국가 세력은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질문에, “효순이·미선이 사건, 광우병, 사드 괴담, 제주해군기지 사건 등 이 모든 세력이 일치된 세력”이라고 했다.
앞서 이 지사는 지난 8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민주당이 집회에 참석한 이 지사를 고발하겠다고 하자 온라인에는 다양한 SNS 계정(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이 개설되면서 ‘나도 고발해주세요(애국가)’라는 이름의 영상이 경쟁적으로 올라왔다. 이 지사가 집회에서 부른 고음(高音)의 애국가는 그 자체로도 화제가 됐다. 이 지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대선주자 반열에 이름이 올랐다.
이 지사가 대선 도전에 나설 수도 있다는 시각은 정치권에서 일찍이 있어 왔다. 도백으로 있으면서 한 행보도 자주 그런 쪽에 맞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미 대선을 사실상 출마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여서 TK 두 수장이 동시에 뜻을 내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 등으로 고민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재선 경북도지사를 지낸 그는 누구보다 정치를 잘 알고 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될 때도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보란 듯 뛰어들어 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 온 그이기도 하다.
지금 국민의힘 유력주자들은 ‘명태균’이라는 덫에 걸려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이 지사의 19일 국회에서의 긴급기자회견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만 하더라도 자주 통화하며 소통했다. 용산 참모들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지사가 긴급기자회견을 한 배경에 용산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에 하나 대선이 치러진다면, 중도층 흡수 없이 보수만으로는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파악한 용산이 그 인물로 이 지사를 밀고 있다는 것이다. 올 가을 경주에서 열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도 이 지사에겐 기회다. 최근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의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간곡히 요청했으며 미국 측 대리인을 통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APEC 회의 참석을 희망하는 친서를 보내는 등 APEC를 발판삼아 역량을 발휘하며 인지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이 지사는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있으면서 굵직굵직한 많은 시책들이 내놓았고 상당 부분은 국가 의제에도 채택시켰다. 돌아보면 그 또한 큰 자산이고 힘이다.
국민의힘 텃밭은 대구 경북이다.
이 지사는 그곳에서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광역단체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지지기반을 넓혀온 이 지사가 앞으로 대선정국이 펼쳐질 경우, 어떤 묘수를 낼지, 또 대구경북의 ‘적장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정치에디터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