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이동이 많은데다 호흡기질환이 유행하는 설연휴를 앞두고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금도 독감이 유행하면서 사망자가 늘어 장례식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지금까지 의료시스템이 버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명절 비상응급 대책을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발표했지만, 환자를 둔 가족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70%가 의정 갈등 탓에 스트레스나 피로감이 크다고 했다.
겨울철에는 특히 초응급환자(중증외상, 급성기 심근경색, 뇌경색 등 전문의 협진이 필요한 환자)가 많아 응급실이 정상 작동되지 않으면 사망자가 속출할 수 있다. 겨울에는 코와 기관지 점막의 방어 능력이 떨어지고, 폐나 기관지에 염증을 일으키는 세균·바이러스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한다. 최근 독감환자 사망자가 급증하는 것도 상급의료기관의 비정상적인 응급실 운영이 원인일 수 있다.
곧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의료위기가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지만, 수련병원과 강의실을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정부가 지난주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협의하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의료계 반응은 냉랭하다. 정부가 언급한 원점협의는 2026학년도 의대정원(2000명 증원포함 5058명)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여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또 사직한 전공의(1만2187명)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수련 특례’와 ‘입영연기’ 조치도 하겠다고 했다.
정부방침에 대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2026학년도부터는 의대정원을 기존(3058명)보다 더 줄이거나 아예 신입생을 뽑지 말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충분히 고려해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의정갈등 해소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공백 상태가 하루빨리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의료시스템 붕괴는 시간문제다. 지난주 치러진 제89회 의사국시 필기시험에는 모두 285명이 응시했다. 응시자 전원이 합격한다 해도 올해 신규 의사 수가 300명을 넘지 않는다. 지난해 의사국시에는 3천231명이 응시해 3천45명이 합격했다.
현재 전공의들이 떠난 수련병원에서는 전문의들의 사직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3~10월 전국 수련병원 88곳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1729명으로, 전공의 이탈 이전인 2023년 같은 기간 사직한 865명에 비해 약 2배 증가했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가중된 진료부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외래·입원 환자 진료가 대폭 줄어들면서 수련병원의 경영난도 심각하다.
2025학년도 개학이 코앞에 다가온 만큼 의대정원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2026학년도에 또 2000명 증원되는 것으로 도장이 찍혀버릴 수 있다. 시급성 등을 고려하면 하루빨리 의료계는 정부와 대화 테이블에 앉아 의정갈등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