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탐방<br/><56> 울주 소호리 산192 한독 참나무숲
만추(晩秋)는 늦은 가을이라는 계절적인 의미를 넘어, 늦가을의 고즈넉한 아름다움, 쓸쓸함 그리고 지나간 시간의 여운 같은 추억이 담긴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우리의 가슴을 물들게 한다. ‘100대 명품 숲’의 하나인 울주 소호리 산192 한독 참나무숲을 만추에 ‘숲과 자연’이라는 공부 모임 회원들과 함께 탐방에 나셨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는데 만산홍엽의 아름다운 산자락을 타고 곡예 하듯이 고갯길과 꼬부랑길을 따라 차로 오르내리면서 드라이브하는 것은 즐거운 미지의 오지 탐험 같다. 누군가는 산 고개 넘어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여 잿길만 찾아다니는 마니아도 있다고 한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만추의 산은 단풍으로 곱게 물들고 반면에 도로변 논밭의 오곡은 벌써 농부들이 갈무리하여 덩그렇게 속을 다 내보여 감흥과 쓸쓸함이 교차했다.
고대 임학과 졸업 후 산림경영 매진
김종관 박사의 한평생 담긴 숲에는
비슷한 키의 참나무 미끈한 몸매 뽐내
그늘에도 잘 자라는 침엽수 함께 심어
경쟁하듯 곧고 굵게 자라 경제성 탁월
그 조화로운 풍경과 가치 인정받아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 선정되기도
도착한 곳은 소호리 산192 한독 참나무 숲을 조성한 김종관 박사님 댁이었다. 마을로부터 좀 떨어진 외딴 산자락 끄트머리에 있는 동향의 아담한 주택이었다. 그는 고려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하고 사유림 경영 사업에 뛰어들어 오늘날의 소호리 참나무숲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1974년 시작된 한독 산림 협력사업으로 독일의 임업 기술자들과 함께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 깡촌 소호리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여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으로 올려놓았다. 이후에도 베트남, 몽골 등 외국 산림 녹화사업에 한평생을 헌신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산림녹화, 사유림 경영 사업 이야기는 ‘소호리 산192’라는 소설로 탄생했다. 언젠가 또 한 편의 인생과 숲이라는 분야의 다큐멘터리로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조명할지 모를 일이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이곳에 다시 돌아와 주민들과 함께 산림 경영으로 잘 사는 마을을 만들고자 주름진 이마에 맺힌 부부의 땀방울은 영롱한 이슬방울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김 박사님의 안내로 ‘소호리 산192 한독 참나무숲’으로 갔다.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아 지금은 100대 명품 숲으로 선정되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50년이 지난 지금 참나무는 평균 키가 20m가 넘으며 가슴높이 둘레가 80cm나 된다면서 그는 지난 일들을 전쟁 승리 장군의 무용담처럼 거침없이 그리고 쉼 없이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민둥산이 된 산을 지속 가능한 산림 경영을 위해 “200년 된 참나무 한 그루를 베어 팔면 벤츠 승용차 한 대를 살 수 있다”라고 하면서 산주들을 설득했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설명 들으면서 울울창창한 참나무 숲속으로 들어갔다. 4800㏊ 산림 대부분이 사유림으로 많은 수의 산주가 동의해야 추진이 가능한 사업이라는 것까지만 듣고 더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왜냐면 수림의 비탈길을 한 줄로 이어져 올랐기 때문에 맨 꽁지에 붙어 오르는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나 홀로 시간이다. 비슷한 크기의 참나무가 미끈하고 큰 키의 잘생긴 자신의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주변을 둘러쌌다. 다른 산의 참나무림이랄까 숲과는 그 모습이 달랐다. 나무 목재로 10층의 건물도 짓는다고 하니 경제성은 충분할 테고, 간벌하고 또 그곳에 어린나무를 심어 키우면 앞으로 계속해서 베고, 심고를 반복할 수 있어 산에서도 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벨 때는 돈이 생기고 녹색 숲일 때는 맑은 공기와 같은 공익적 가치와 그곳에서 힐링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사업이 있을까 싶다.
참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나무이다. 이름도 나무 중 가장 재질이 좋고 진짜 나무란 의미의 ‘참’이다. 상수리부터 굴참, 떡갈, 신갈, 갈참, 졸참나무까지 6종을 보통 ‘참나무’라고 부른다. 활엽수인 참나무 아래에 그늘에도 잘 자라는 전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가 조화롭게 조성된 숲은 울주 소호리 참나무 숲이 유일할 것 같다. 숲속에는 수령이 40~45년 가까이 되는 참나무들이 전나무, 잣나무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이는 곧게 자라는 침엽수들 덕분에 참나무는 경쟁하여 자기도 곧고 굵게 자랐다. 나무와 나무 사이 공간이 좁아지니 참나무는 옆으로 가지를 뻗지 않고 곧게 잘 자랐고 결국 숲은 경제성 있는 보기 좋은 울창한 숲으로 변해 있었다. 참나무를 간벌하면 아래 전나무가 후계목이 되고 전나무를 간벌하고 나면 또 잣나무가 후계목이 될 수 있도록 조림되어 있었다.
나무 아래 땅 위에는 나뭇잎으로 빈틈없이 깔려있어 땅속에 살아가는 미생물과 작은 동물들은 겨울나는데 아무런 걱정도 없겠다 싶다. 나무와 이별한 낙엽은 이렇게 또 희생정신으로 이불이 되고 먹이가 되는 것을 볼 때면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낙엽 위에 떨어진 도토리는 흙을 만날 수 없어 뿌리를 내릴 수 없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산까치나 다람쥐 등이 땅속에 파묻어 놓고 때로는 잊어버려 뿌리를 내리고 어린나무로 자란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낙엽이 땅을 덮는다고 하지만, 바람이 이를 밀어내고 짐승이 뒤집혀 놓아 도토리는 흙과 교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마침, 도토리 한 알이 몸속의 기운을 내밀고 새싹으로 변하여 줄기가 아닌 뿌리로 변하여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대단한 힘이다. 참으로 괴이한 현상이다. 어떻게 부드럽고 연약한 새싹이 거친 땅을 파고들까.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한 생명의 힘을 느꼈다.
나무는 자신을 보호한 녹색의 잎을 가을이 되면 미련 없이 또 어김없이 원래의 곳으로 보내드린다. 뿌리에서 빨아올린 물을 나뭇잎에 불어넣어 녹색의 옷으로 자신을 보호하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이 올 때면 물의 공급을 멈추고 나뭇잎은 원래의 모습인 울긋불긋한 단풍의 모습으로 변하고 붙잡아 주던 물의 손길이 끊어지면 원래의 곳으로 돌아간다. 이별이 아닌 또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나무의 생명은 끝이 아니라 변하고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순환이 아닐까 싶다.
경사진 숲의 비탈길은 낙엽으로 인하여 미끄러웠다. 그 미끄러움이 오히려 종아리 근육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된다니 이것 또한 불평할 일이 아니다 싶다. 드디어 비탈길은 끝나고 넓고 평탄한 임도가 나타났다. 주변의 산 능선, 골짜기 등 먼 곳을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맞은편 산에는 일본잎갈나무의 단풍이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했다. 여름 같았으면 볼 수 없는 경관을 만추에는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가을 산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언제까지 임도를 다 돌아다니며 걸을 수는 없으니, 공부 모임의 지도교수이며 김종관 박사의 대학 동기이기도 한 박용구 교수님께서 여기서 기념 촬영을 하고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맞은편 동쪽 백운산과 남서쪽 고헌산, 북쪽 문복산 자락의 물송골봉이 병풍처럼 해발 500m 이상의 고지대인 소호리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국토 면적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산림행정의 수장이신 임상섭 산림청장은 얼마 전 이곳 소호리 참나무숲을 찾아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을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 미래세대를 위한 자원보존과 산림의 사회적 기능을 유지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제 산림을 보존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과 소득으로 이어지도록 산림행정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만추의 계절에 만난 ‘소호리 한독 참나무 숲’의 탐방은 우리 산림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흐뭇했다.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은…
국토녹화 50주년을 맞아 전국의 집 가까운 숲 가운데 산림청이 우리나라의 생태적, 역사적, 문화적, 경관적 가치를 지닌 숲을 선정해 발표한 것이다.
생태적 가치(희귀 식물과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건강한 숲)를 지닌 숲, 역사·문화적 가치(오래된 숲, 전통적인 이야기가 깃든 숲)를 가진 숲, 휴양·경관적 가치(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힐링 공간으로 활용이 가능한 숲)를 간직한 숲을 지정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