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귀봉(靈龜峰)과 서원(書院)을 감돌고 흐르는 죽계천 맑은 물에 은행나무와 솔숲이 목욕재계한다. 솔잎에 매달린 이슬방울은 죽계천 윤슬의 반짝임과 솔숲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로 불을 밝힌 듯 유난히도 반짝인다. 유생들과 함께 둥그렇게 성생단(省牲壇)을 둘러싸고 있다. 뭔가 성스러운 의식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살이 통통 오른 소 한 마리가 멀뚱멀뚱한 큰 눈으로 콧김을 내뿜고 있다. 서원의 관리가 향사 의식의 순서를 적은 홀기(笏記)에 따라 제향 제물을 올려 두고 흠집 여부를 살펴 보고 있는 중이다. 성생의(省牲儀) 또는 충돌례(充腯禮) 등으로 불리며 제물을 검사하고 품평하는 생간품(牲看品)을 하고 있다. 서쪽에 선 축관이 준비한 제물이 적합한지를 ‘돌(腯)’하고 물으니, 헌관이 좋다고 판단하여 ‘충(充)’하니 의식은 끝이 나고 제물을 준비한다.
소수서원 출입하는 지도문 옆에 자리잡은 동갑내기 은행나무 부부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 숲 벗 삼으며 유생에 성리학의 가르침 전해
가을 익으면 죽계천 물빛도 노랗게 물들어 오늘날 힐링 최적지로
이곳 순흥 출신의 고려 시대 대학자 안향의 학문 정신을 기리는 행사 의식 중 제물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솔숲 속 소수서원 지도문 앞 성생단 양옆에 서 있는 은행나무는 처음부터 오늘날까지 향사 준비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축관과 헌관은 제물로 사용 함에 새끼를 밴 암소와 병들거나 약한 소는 제외하고, 참여한 제관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 될 수 있도록 그 기준을 삼으라고 암시했을지도 모른다. 성인을 섬기고 그 정신을 이어받는 향사 일에 제관이나 유생들은 힘들다거나 불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물은 결국 알게 모르게 참여한 사람들의 배를 채워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향사나 제사에 참여도 저조하고 그로 인하여 힘들어하며 불평하니 옛날과는 희비가 엇갈린다.
안향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이며 동방 신 유교의 비조(鼻祖)라고 한다.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周世鵬)이 이곳에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백운동 서원을 창건했다. 이를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한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서원은 홍역을 치렀지만, 소수서원은 역사적 중요성과 상징성이 높았기 때문에 완전히 폐지되지 않고 있다가 그 후 다시 복원하여 지금까지 잘 보존하여 유지되어 오고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곳에는 통일신라시대 숙수사(宿水寺)라는 절이 있었다. 절의 상징 조형물인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무슨 사유인지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소수서원이 들어섰다. 그리고 주변에는 울창한 숲을 조성하고 서원을 출입하는 지도문 양옆에 은행나무 암그루와 수그루 두 그루를 심어 놓았다. 소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항상 푸름을 간직하는 것이 선비의 기개와 닮았기 때문에 학자수(學者樹)라 불렀다. 그리고 우람하고 하늘 높이 치솟은 은행나무는 할아버지와 손자 간의 세대를 잇고 인내와 기다림을 상징하는 나무로 공손수(公孫樹)라 불렀다. 이러한 상징적인 자연물을 늘 가까이 하면서 잊지 말라고 하는 숨은 뜻이 담겨있지 않을까 싶다. 자연에서 휴식하고 수양하는 일은 조선 시대 성리학을 배우는 하나의 수업 과정이기도 하다.
솔숲은 낙락장송(落落長松)이라 불리는 건장한 소나무로 울울창창하다. 숲은 서원의 경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기록에 따르면 선조 1586년에 평창의 유생 이충언이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또한 효종 1654년에 영귀봉 아래에서 남쪽 나래에 이르기까지 소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는데 산 것이 겨우 500여 그루였다고 한다. 그 후 소를 방목하거나 화재가 나지 않도록 하고 소나무를 더 심어 지금의 숲으로 무성하게 했다고 한다. 서원을 짓고 주변에 나무를 심어 숲속 서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조상의 나무사랑, 숲 사랑, 자연사랑이 돋보이는 사례로 오늘날까지 우리는 아늑하고 아름다운 풍광에 심신을 치유받는다.
푸른 하늘로 힘차게 솟아있는 솔숲의 은행나무 노거수 두 그루는 나이 500살 동갑내기이다. 키 21m, 가슴둘레 4m의 수나무는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키 25m, 가슴둘레 5m의 암나무는 죽계천 언덕 위에 있다. 수피가 벗겨져서 그런지 밑둥치에서 많은 줄기가 뻗어 올랐다. 서로 마주 보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부부 은행나무이다. 오늘따라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노란 꽃잎을 방문객의 머리 위에 뿌리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솔숲의 풍광이다.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소수서원의 이름에 걸맞게 은행나무도 천연기념물로 품격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에는 국보와 보물, 안향과 주세붕 초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문화재를 더욱 품위 있게 받쳐주는 것은 서원을 감싸고 흐르는 죽계천 맑은 물과 푸른 솔숲, 거대한 암수 두 그루의 은행나무 노거수가 아닐까 싶다. 이들 삼박자가 없다면 소수서원 역시 덩그런 벌판 위에 세워진 하나의 건물에 불과할 것이다. 특히 소수서원에 영혼을 불어넣고 활기를 띠게 하는 것은 살아 숨 쉬는 자연물인 솔숲과 은행나무이다.
죽계천 주변에는 솔숲과 함께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각종 풍류를 즐기며 경각심을 고취하는 시설물과 글귀가 있다. 푸른 솔숲에 노랗게 물든 단풍잎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맑은 죽계천에 비친 노란 단풍 옷을 입은 은행나무는 또 어떠하고. 이런 환상적인 경관에 취하면서도 또 배울 것은 배우는 삶 속에 풍류와 배움이 함께하는 길을 걷도록 해 두었다. 주세붕(周世鵬)이 경(敬)이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겨 놓은 경자암(敬字巖), 푸른 산의 기운과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취한대(翠寒臺), 원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정자인 경렴정(景濂亭) 등 죽계천을 끼고 있어 자연을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모임과 풍류, 심신을 수양하던 장소로 풍광이 수려한 곳에 위치하여 유생들은 시연(詩宴)을 베풀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웠다. 이곳에서 우리 조상의 다양한 삶을 그려 보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소수서원의 은행나무와 솔숲은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조화의 정수다. 500년 세월을 견딘 은행나무는 유생들의 굳건한 의지를 상징하고, 적송의 푸름은 선비의 절개를 닮았다. 죽계천 맑은 물과 경자암의 글귀는 학문의 숭고함과 성인의 공경을 일깨운다. 솔숲 사이를 걸으면 자연의 품에서 선비의 기개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은행나무의 거대한 품은 후학을 품는 서원의 정신과 같고, 소나무의 긴 가지는 하늘을 향해 쉼 없이 뻗어 나가는 학문을 닮았다. 이곳은 학문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조선 유생들의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힐링의 장소로 탈바꿈하지 않았나 싶다.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이 곱게 물든 은행나무 단풍 아래 가을 정취에 넋을 잃고 있다.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은…
소수서원은 지방에 설립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 서원 중에서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돈암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도동서원의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됐다.
소수박물관은 성리학을 주제로 선비문화를 조명한 유교 전문 박물관이다.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은 정신문화를 계승함과 동시에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대에 ‘유(儒)와 한(韓)’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문화 재창달 교육원이고, 선비촌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터다.
선비세상은 대한민국 K-문화 테마파크다. 한옥, 한복, 한식, 한글, 한지, 한음악의 6개 한국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터랙티브 콘텐츠와 첨단매체를 통해 선비정신을 폭넓게 체험할 수 있는 복합 문화 체험공간으로 역할한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