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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깃든 전설과 함께 우리 이야기를 담은 은행나무

등록일 2024-11-20 18:57 게재일 2024-11-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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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청도 대전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나무는 우리의 삶에 문학과 예술 등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고향인 청도를 오고 갈 때면 길목에서 쉼터를 제공해 주고 반겨주는 고마운 분이 있다. 청도 대전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서원리 자계서원 은행나무, 원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삼총사이다. 서원리 은행나무는 자계서원에 배향되는 탁영 김일손 선생의 상징물이고 원리 은행나무는 사대천왕과 함께 천년 고찰 적천사의 호위 무사다. 대전리 은행나무 노거수는 내려오는 전설로 인하여 나무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로 각인되어 보호받으며 마을을 홍보하는 홍보대사이다. 원리의 은행나무와 마찬가지로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나라의 보호를 받는 귀족계급의 나무이다. 삼총사로부터 쉼터를 제공받고 가르침과 교훈을 얻고 있으니 그곳 나무 밑은 나에게는 안락한 카페요, 나무는 인자하신 스승님이다.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달래 주며 힘과 용기를 준다. 그분들 품에 안겨 편안히 쉬기도 하고 늠름하고 우람한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한 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키 30.4m에 가슴둘레 8.8m의 수나무

밑둥치서 첫 두 가지 자라 하나로 붙고

나중에 또 새로운 가지 자라 또 하나로

지금은 모두가 하나의 큰 줄기로 탄생

요즘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면 주변은 만산홍엽으로 아름다움에 취해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조상 묘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청도군 이서면 대전리 638번지 마을 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은행나무를 찾아 쉬었다 왔다. 주민들은 나무 방책에다 작은 돌로 주변을 경계 지우고 그에게 물리적 접근을 막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귀한 손님에게 주인이 제공한 푹신한 방석에 곧게 앉은 자세이었다. 정자를 설치하고 대리석으로 앉을 자리는 물론 주차장까지 조성하여 방문객의 편의를 돕고 있었다. 우람한 은행나무의 아름다운 단풍을 배경으로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연인들이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의 우람한 모습과 노란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무가 되어갔다. 아직 노란 단풍이 물들어 가는 중이라 주말인 11월 23일 토요일 전후로 정점을 찍을 듯싶다. 산그림자가 어둠의 이불로 마을과 은행나무를 덥고 동산으로 달음질칠 때 마을을 빠져나왔다.

대전리 천연기념물 301호 은행나무는 키 30.4m, 가슴둘레 8.8m의 수나무이다. 밑둥치에서 처음 두 가지가 자라 하나로 붙고 나중에 또 새로운 가지가 자라 또 하나로 되어 지금은 모두 하나의 큰 줄기로 탄생했다. 이렇게 다수의 수간(樹幹) 다발로 왕성하게 성장하면서 웅장한 수형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낙엽이 질 때 소리 없이 조용히 지면 이듬해에 풍년이 들고, 여러 차례 바람에 흩날려서 낙엽이 지면 흉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식물 개체의 생장 환경이 양호하면 일정 기간 내에 낙엽이 지며, 생장 환경이 불량하면 각각의 수간별로 낙엽이 지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인데, 노거수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생활 속의 과학이다.

많은 사람이 노거수 나이가 얼마인지 묻는다. 아마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누군가 기념식수로 심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다면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그럴 때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수백 년을 살아오고 있는 신령 같은 분의 나이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얼버무려버린다. 물론 과학적으로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은 있지만, 경비도 많이 들고 고령의 노거수 몸을 상처 내는 일은 좋은 방법도 아니고 또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나이는 400년 정도 된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가장 오래된 1300년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1300년 전 이곳을 지나가던 한 도사가 원래 이곳에 있던 우물의 물을 마시려다가 빠져 죽었으며, 그 후 우물에서 이 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또 다른 비슷한 전설로, 이 마을을 지나가던 한 여인이 물을 마시려다가 빠져 죽었는데 주머니에 있던 은행의 싹이 터서 자랐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지만 때로는 은행이 달리는 수도 있다고 전해 온다. 마을 당산나무로 취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전설이 아닌 실제 사건이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설정해 보았다. 재미 삼아 전설의 나이가 맞는지 조사자의 나이가 맞는지 궁금하여 나름대로 나무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가슴높이 둘레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1982년엔 8.5m이었고 2005년 조사에서 8.65m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23년 동안 15cm 굵어졌다. 이는 일 년에 평균 6.5mm씩 굵어진 셈이다.

이러한 가슴높이 둘레의 증가를 고려한 대전리 은행나무 노거수의 나이는 2005년에 1,330세가 된다. 이 수령은 전설로 전해지는 수령 1982년 당시 1308세이고, 2005년 1331세이다. 공교롭게도 거의 일치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설의 이야기가 맞는지 조사자의 기록이 맞는지는 나무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전설의 나이가 맞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등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의흥 예씨(義興芮氏) 세거지인 이곳 청도 대전리는 ‘한밭’으로도 불리며, 골이 깊고 들이 넓어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경북 예천 부군수를 역임한 예경해 시인은 이곳 대전리 출신이다. 2019년 시집 ‘누고?’를 출간했다. 이 시집은 경상도 사투리를 활용하여 서민들의 삶과 정서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표제작인 ‘누고?’는 성형수술 후 할아버지를 찾아간 손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 간의 소통과 정체성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또한, 예경해 시인은 전통과 현대, 서정과 비밀, 사랑과 사투리, 고향과 도시, 선(禪)과 해학 사이의 역설적인 시학을 추구했다. 그는 이곳에 태어나서 살면서 천 년 묵은 은행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서정시를 창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는 우리의 삶에 문학과 예술 등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지구상 다양한 인류 문화 가운데 노거수 사랑은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전통문화가 아닐까 싶다.

필자의 시 ‘은행나무’

오랜 세월 뿌리내린 너

아득한 세월을 넘어

깊이 깃든 전설과 함께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구나.

긴 세월을 품고 서서

말없이 나를 반겨주는 너

바람에 실린 낙엽 소리에

풍년을 속삭이는 나무

고단한 몸 기댈 때마다

넌 조용히 힘을 주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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