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이 국내외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의료 공백사태가 9개월째 접어들면서 국가의료시스템이 망가지기 일보직전인데도, 최근에는 관련 기사가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위중한 환자가 없는 가족들은 마치 의료현장이 평온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다.
당장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신규의사가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올해 의사 국가시험을 봐야 했던 의대 본과 4학년(7월 22일 기준 3088명)들이 대부분 휴학하면서 내년에는 의사 공급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의사국가시험은 통상 9∼10월에 실기, 이듬해 1월에 필기시험을 치르는데, 올해 실기시험에는 347명만 응시했다. 예년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로인해 4∼5년 후 배출될 전문의도 2000명이상 줄어들게 됐다.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대부분 전공의(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과정을 거치고 전문의 시험을 치른다. 내년에는 인턴 과정을 밟는 전공의가 거의 없으니, 자연적 4~5년 후 배출될 전문의도 극히 소수다. 신규의사가 없으니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수급 문제도 큰 과제다.
상급종합병원은 현재 심각한 과부하에 걸려 있다. 응급의료센터 의료진 약 30%가 과로로 인해 사직한 상태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최근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심장 수술이나 장기이식 수술 등 중증 환자의 진료는 비상사태”라고 했다. 전공의가 병원에 돌아오지 않는 한, 정부라고 해서 별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그저께(4일) 당 최고위 회의에서 “하루하루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보다 시급한 민생은 없다. 오는 11일 여야의정 협의체를 출범하고자 한다”고 했다. 오는 11일 첫 회의를 열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의료위기를 방관한 채 남 탓만 하는 상황에서, 한 대표가 주도적으로 협상테이블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은 박수를 받을 일이다.
현재 의료단체 중 대한의학회와 의대학장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정부가 최근 의대생 휴학을 승인한 후, “협의체에 참여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었다. 다만 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재검토하지 않는 한 불참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정작 협의체를 제안한 민주당이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며 발을 빼는 모습이다. 의대생과 전공의 단체가 참여하지 않는 협의체는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표는 “여의정(여당·의료계·정부)만이라도 우선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문제는 정쟁을 떠나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민주당은 협의체 출범에 대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의대생, 전공의단체도 정부가 “2026학년도는 증원 ‘0명’부터 논의할 수 있다”고 협상 여지를 내비친 만큼, 이제는 협의체에 참여해서 대화를 통해 꼬일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