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霜降)을 지났건만 한낮 기온은 20도를 훌쩍 넘어선다. 그나마 새벽 최저기온이 5도 내외를 넘나드는 것을 위로의 하나로 삼을 뿐이다. 서리 내릴 무렵에 아침이슬이 뻑뻑하게 내리는 시절이니 무엇을 더할 것인가?! 그래도 시절이 변해가는지 동네 안팎의 감나무에 붉은 물감이 짙어지고, 마른 잎이 앞다투어 산들바람 따라 지상으로 하강한다.
엊그제 뒤뜰에 있는 감나무에 달린 홍시를 따러 나섰다가 감나무처럼 늙은 뒷집 할머니와 마주친다. 요즘 귀가 어둡고 눈이 침침하여 심사가 아주 고단한 얼굴이다. 평소 활달하고 성미도 괄괄한 분인데, 말수도 줄고 활동량도 많이 적어진 듯하다. 생로병사의 하나인 노화를 할머니 역시 피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2045년까지 버틴다면 특이점과 대면할 수 있다는데!….
청도(淸道)를 뒤덮고 있는 다수의 감나무는 쟁반을 닮았다는 이른바 반시(盤<67FF>)지만, 우리 집 감나무는 종자가 다르다. 탱글탱글하고 미끈한 생김새가 둥글넓적한 반시와는 전연 닮지 않았다. 그래선지 맛도 상당히 다르다. 반시는 달긴 하지만, 깊이가 얕은 달착지근한 맛이다. 하지만 우리 감나무는 맛의 끈기와 깊이가 반시와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다르다.
이사 온 첫해 가을 나는 처음으로 감을 제대로 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익은 홍시를 아무리 많이 보아도 한 번도 먹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터였다. 하지만 울안에 감나무가 있고 보니 환경 때문에 감을 먹게 되었고, 급기야 감을 깎아서 말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언젠가는 1500개 정도의 곶감을 마련한 일도 있었다.
거의 일주일 내내 감을 따서 마루로 옮기고, 등 뒤로 햇볕을 맞으며 온종일 감을 깎고, 베란다에 내걸고 하는 중노동을 솔선했으니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노릇이었다. 손 통증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그 뒤부터 나는 감 전도사가 되었다. 그것이 홍시든 반시든 단감이든 말랭이든 곶감이든 간에 감을 예찬하기 시작한 것이다.
농약을 치지 않고, 거름도 주지 않기에 울안의 늙은 감나무의 수확은 해마다 줄어들었다. 탄저(炭疽)가 달려들거나, 가을장마가 들라치면 수확 자체가 아예 없는 해도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100여 알의 굵은 열매가 달렸기로, 올해는 오랜만에 곶감을 만들 수 있겠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누군가 감을 몽땅 훔쳐 가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담장도 없는 촌집에서 주인이 출타 중임을 확인하고 단박에 감서리를 감행한 것이었다. 허탈한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런데 올해는 감이 제법 많이 달린 데다가 병충해도 많지 않다. 상강도 지났으니, 일단 감을 깎아보리라 작심한다. 줄기를 잡아채는 감 따개로 오랜만에 흐뭇한 수확을 하고, 마루에 퍼질러 앉아 감을 깎기 시작한다.
염치없는 모기가 덤벼들어 피를 요구하고, 눈치 없는 파리가 잘 깎은 감에 올라앉아 주인행세를 한다. 저쪽에선 초록색의 사마귀가 위풍당당하게 갈지자걸음이요, 공중에선 노랑나비가 비행 솜씨를 한껏 자랑한다. 푸른 하늘 높이 비행기의 날개 은색으로 빛난다. 가을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