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고난과 달리기

등록일 2024-10-07 19:12 게재일 2024-10-08 17면
스크랩버튼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숨쉬기다. /언스플래쉬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숨쉬기다. /언스플래쉬

무더운 날씨 탓에 런닝 머신 위로만 올랐던 날들을 뒤로하고 바깥 달리기를 시작하면 어딘가 몸이 적응하지 못해 낯선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금세 서늘해진 공기, 달릴 때마다 바뀌는 풍경, 물소리, 풀내음과 함께 뛰다보면 잠자고 있던 몸의 감각이 다시금 깨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뛸 수 있게 된다.

무언가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든다면 재빨리 런닝복으로 갈아입은 후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좋다. 과거의 일, 미래의 걱정보다는 현재 내가 지금 달리며 마주하는 힘듦을 몸으로 겪어내고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정직한 일은 달리기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숨쉬기다. 코로 숨을 두 번 들이마시고, 입으로 두 번 내뱉으며 반복된 숨을 쉬다보면 더 멀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나아갈 수 있다. 또한 몸은 살짝 앞으로, 고개는 살짝 든 형태로 시선은 너무 멀리 가 있지 않고 내 앞을 바라본다는 생각으로 시선을 두고 뛰면 좋다. 달리기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챙기며 뛰지 않는다면 가장 어려운 운동이기도 하다. 욕심 있게 마구 달리다 보면 결국 내 숨에 못 이겨서 바닥에 구르고 마는데, 그럴 때 가장 화가 솟구치기도 한다.

달리기에서 또 중요한 것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쉬지 않고 삼십분 정도 달리다보면 러닝하이가 찾아와 너무나도 상쾌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러닝하이가 찾아오면 정말 이대로 쭉 영원히 계속해서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무것도 방해 받지 않고, 몸도 더 이상 힘들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러닝하이는 눈앞에 어떠한 장애물이 발생해도 뚝심 있게 계속해서 달리고만 싶게끔 만든다.

하지만 야외달리기를 하다보면 은근히 마주하는 장애물들이 있는데, 신호등의 신호가 걸린다던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난다던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파를 뚫고 더는 앞으로 빠르게 나아갈 수 없는 등의 문제를 마주하면 빠르게 구르던 발을 멈춰야 한다. 대신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숨을 조금 더 차분히 몰아쉬며 거침없이 뛰던 심박수를 한 템포 낮추는 것 또한 좋다.

또 하나 달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발끈을 내 발에 맞추어 적절히 묶는 것이다. 너무 꽉 묶다보면 달릴 때 발이 부어 뛰기 어렵게끔 만들고 너무 여유롭게 묶다 보면 발이 신발 안에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빨리 달리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욕심 없이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달리기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부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욕심만큼 실수가 잦았고, 빠르게 해내는 사람들 속에서 자꾸만 의기소침 해졌다. 어떠한 불필요한 자극에도 그저 묵묵히 내 길을 잘 개척하며 나아가면 되는 것인데도 자꾸만 타인이 눈치를 보고, 불필요한 말들을 마음속에 담아 오랫동안 묵혀뒀다.

후회와 걱정은 계속해서 지난 과거에 묶여 있게 만들었고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걸까, 라는 포기가 들 때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동시에 여름 내내 생애 한 번은 꼭 읽으면 좋다고 했던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도 한 참 읽어야 할 것이 많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지만, 그 날 읽은 성경 구절이 좋다면 내 삶에 동일하게 적용해보는 방식을 살고 있다.

고단함이 느껴질 때마다 내가 다이어리에 적는 구절은 고린도전서의 10장 13절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엔 또한 피할 것을 내사 너희를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와 같은 구절을 힘주어 눌러 적어본다.

감당 못할 시련은 없는 것이고, 만약 감당 못할 시련이 찾아온다고 생각이들 때쯤 피할 길이 있어 능히 감당하게끔 한다는 뜻으로, 나는 이 구절에서 왠지 모르게 잔뜩 긴장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크게 숨을 내어 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마주하는 어려움이 아무리 크고 출구가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인내를 통해 달리고, 달리며 고난의 길을 뚫고, 그러면서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면 현재 내가 마주하는 이 어려움도 우습게도 가벼워질 것이다.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