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모시되 집에서 집례 않고<br/>기제사도 합사 방식으로 변경<br/>가족 갈등 줄면서 주부들 선호<br/>썰렁한 재래시장에 영향 미쳐
추석, 설 차례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기제사도 합사 방식으로 변경되는 등 제사 문화 변화가 뚜렷하다.
올 추석을 앞두고 재래시장 경기가 확 꺽인 것도 제사 소멸 등이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포항시 북구 창포동의 김 모(63)씨.
태어 난 후 절을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추석이나 설 명절 차례 제사를 지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부모로부터 제사를 물려받은 후엔 더 풍성하게 음식준비를 해 조상을 모셔왔다. 그러나 올 추석부터 명절제사는 지내지 않기로 형제 등 가족들과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시간을 갖게 된 그의 동생 가족들은 올 추석엔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경주의 박 모 씨네 가족 역시 명절 제사는 몇 년 전 없앴다. 이 집은 한 발 더 나아가 부모 기제사도 합쳐서 지내는 합사(合祀) 방식으로 바꿨다. 아버님의 기일에 부부를 함께 모시고 어머님의 제사는 생략하기로 한 것. 박 씨는 “오랫 동안 이어온 관습이라 제사 간소화를 하는데 고민도 없지 않았으나 제사의 본질은 조상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마음인 만큼 형식보다는 정성을 다해 모시는데 더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제사는 모시되 집에서 집례를 하지 않는 경우도 증가추세다.
포항 남구 이동의 권 모 씨.
그는 그동안 지내오던 차례와 기제사 모두를 자기가 다니는 절로 이관시켰다. 이후 집에서는 일절 음식을 하지 않고 기일에 맞춰 절에 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절에서의 제사는 대부분 표준제로 운영되고 있어 편리성 등으로 인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제례 문화가 많이 변하고 있다. 그동안 조상을 모시는 제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재확인하기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지만 이제는 세대가 달라지면서 제사도 세태에 맞게끔 각 가정마다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 합의를 통해 간결하게 가고 있는 것.
이런 흐름은 그간 제사 참여와 제수 비용, 음식 장만 등으로 가족 갈등을 겪는 경우도 사라지게 만들어 특히 주부들이 선호하고 있다.
지난해 추석에는 성균관에서 차례상 간소화 표준안을 내놓기도 했다. 성균관은 ‘조상을 기리는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음식 가짓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히고 조상의 위치와 관계 등이 적힌 지방이나 조상의 사진을 두고 제사를 지내도 된다는 것과 함께 차례와 성묘의 선후는 가족이 의논해서 정하면 된다고 발표했다.
제사 변화 문화는 예법을 중시하는 종가 등에도 불고 있다.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지난해 지역의 40개 종가를 대상으로 제사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밤 11∼12시에 지내던 조상제사를 모두 저녁 7∼9시로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그간 유지해 오던 4대 봉사를 3대 봉사, 2대 봉사로 바꾼 사례가 11개 종가였으며 이 가운데 10개 종가는 조부모까지의 2대 봉사로 변경, 종가 집에서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경주향교의 한 관계자는 “조상 제사의 지침을 마련한 ‘주자가례’에서도 제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고 있다”며 제사 간소화 흐름은 세대가 교체되면서 향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피현진·단정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