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걸핏하면 ‘민심’을 들먹인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자주 인용한다. 그야말로 아전인수로 필요할 때마다 끌어다 쓰는 게 민심이란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심을 얻은 자가 천하를 얻었다’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민심이 반드시 옳다’는 말이 되지는 않는다. 과연 인류의 역사가 민심에 따라 옳은 방향으로만 흘러온 것인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오히려 변덕스럽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부화뇌동하기 쉬운 것이 민심이다.
민심이란 곧 여론이다. 정보화시대인 요즘은 여론조사에 의해 민심은 수시로 계량화된다. 국민의 투표에 의해 정권이 결정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여론전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이 승자가 된다. 일찍이 민심의 속성을 간파하고 선전·선동으로 민심몰이에 성공한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의 나치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에 열광하면서 파탄의 구렁텅이로 휩쓸려 들어갔다. 한때 낙농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도 석유 수출로 풍요를 누렸던 베네수엘라도 부실한 나라로 전락해서 빈곤의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것은 민심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의 결과이다.
얼마 전에 치른 우리나라의 총선에서도 민심이란 게 얼마나 허접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수많은 범죄 혐의로 법원과 검찰청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는가 하면, 파렴치범으로 2심까지 유죄 확정을 받은 조국이 만든 당을 비례로 12석이나 차지하도록 표를 준 것이 바로 민심이었다. 대학생 딸을 개인사업자로 탈바꿈시켜 ‘사기 대출’을 받은 경기 안산갑의 양문석 후보나, ‘이화여자대학생 미군에 성(性)상납’ 주장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비하하는 등 음담패설 수준의 망언을 일삼은 경기 수원정의 김준혁 후보를 반듯한 상대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시킨 것도 민심이었다.
지난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한동훈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대표가 되었다. 그만큼 우파의 민심이 한동훈에 쏠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 드러난 그의 인성이나 정체성에 불안한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수차례나 보낸 문자를 ‘씹은’것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였고,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보수궤멸을 꾀한 문재인 정권 초기가 자신의 화양연화였다고 한 것과 총선후보의 공천에서 좌성향을 보이는 등 정체성에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 총선에 패배한 후에 그가 한 “민심은 언제나 옳다”는 말이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과 조국이 이끄는 당에 압도적인 의석을 몰아준 민심이 정말 옳았다는 것인지, 자신도 그런 민심의 향방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또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민의 눈높이’도 어느 국민의 어떤 눈높이를 말하는 것인지, 그래서 결국 당을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은 노파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