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으로 둘러보길 원했던 터라 해설은 거절하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티끌 하나 없이 잘 관리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측 연못엔 수련이 만개해 있었다. 화랑정을 지나 한 바퀴 돌아보았다. 화려한 꽃들이 많은 계절이나 수련은 더운 여름의 특별한 묘미다.
특히 노란색 수련잎은 빛을 품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연 구경에 빠져 본래 목적을 잃고 있을 때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들어섰다. 무명용사비를 지나 중간 중간 기념사진을 찍어가며 높은 계단을 올라갔다. 한참을 뒤처져 그친 비에 접은 우산을 지팡이 삼아 계단을 오르니 영정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문무대왕, 태종무열왕, 흥무대왕으로도 불리는 김유신 장군의 영정들이다. 모두 김기창 화백의 그림이다.
‘바보 산수’, ‘세종대왕 어진’ 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한국 미술사에 끼친 영향이 크지만 1940년대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
건물 화랑에는 기록화 17점이 걸려있다. 오승우, 오원배, 박비오, 정창섭, 김태 등 당대 유명화가들이 그린 기록화들이다. 1세대 서양화가 오지호의 아들로도 잘 알려진 호남 대표 원로화가 오승우 작가의 작품이 10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기록화는 적게는 100호, 최대 500호짜리 김태 작가의 작품 등 대작이 주를 이룬다. 100호는 물론이거니와 500호 크기의 작품은 여느 작가에게도 쉽지 않은 대작 중 대작이다.
그리고 기록화는 당시 시대 상황을 표현하기에 그 시대의 의복이나 장신구 등에 대한 고증이 필요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자연광과 비바람을 그대로 견뎌내고 있는 작품들을 보니 건물을 지을 당시 기록화의 보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듯하다. 애초에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 작품이 야외나 마찬가지인 회랑에 전시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의 전시 목적은 달성했을지 모르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달리 보존 관리되어야 한다.
박물관에 모셔진 백자나 유물들도 예전엔 일상생활에 즐겨 쓰인 물건 중 하나였을 것이다. 건물 내 왕들의 영정 대비 회랑의 기록화들은 균열이 눈에 띄었다. 참여 작가 중 오원배 작가를 제외하고 모두 작고하신 상태다. 그림은 재생산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잘 그려진 그림들을 보며 역사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하기엔 좋았다.
천관과 김유신 장군 이야기가 그려진 그림 앞에서 여기가 할머니 밭일지도 모른다고 하자 아이는 신기한 듯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먼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던 역사가 현실로 와닿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림들을 뒤로하고 회랑 양 끝에 마련된 쉼터에 신발을 벗고 올라 내려다본 풍경은 더없이 아름답다. 경치에 반한 건지 먼저 도착한 단체의 사람들도 한참을 머무르고 있었다.
오른 만큼 많은 계단을 다시 내려 한 번 더 수련을 감상하고 밖으로 나왔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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