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서울에서 역주행으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교통사고의 운전자 나이가 68세로 알려지면서 고령자 운전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운전자는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고령자 운전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는 것 같다.
이 사고로 최근 우리사회에 확산하고 있는 ‘노인 이지메(왕따) 풍조’가 더 심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도 찬반논란이 일고 있지만, 지난달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들의 운전능력을 평가해 야간·고속도로 운전금지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정부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8년 개띠’로 표현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지난해부터 노인 범주에 들어가면서 우리사회는 노인인구가 급증했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아직 노인이 됐다는 의식이 전혀 없이 열심히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 운전은 필수다. 그런데 갑자기 ‘조건부 운전면허 대상’으로 지명 당하니, 사회적으로 고려장을 당한다는 상실감을 지울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다. 연구원이 매달 펴내는 간행물(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이 보고서에서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노령층이 물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여 노후를 보내면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노인을 이민 보내면 ‘비(非)생산 인구’를 줄일 수 있다는 기가 막힌 보고서다.
의식적이든 실수든, 정부와 공공기관이 내놓은 이러한 ‘노인 이지메’ 정책은 시민사회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최근 대구 수성구 한 4성급 호텔 헬스장에서 ‘만 76세 이상인 고객은 회원 등록과 일일 입장이 불가하다’는 글이 게시돼 논란이 됐다.
정부보다는 연령을 10살 정도 올렸지만, 헬스장의 처사가 “상식이하의 노인차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달에는 개그맨 3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을 소개하면서 “여기가 1만 5000명 장수 마을이다.
들어본 적이 있냐. 중국인 줄 알았다”며 노인인구가 주류인 자치단체를 거리낌없이 조롱했다. 이 유튜브 출연자들은 영양군에서 젤리를 먹다가 “내가 할머니의 살을 뜯는 것 같다”는 섬뜩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65세 이상 인구를 노인이라는 범주에 놓고 ‘님비(Not In My Backyard)’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은 오래됐다.
최근에는 좌·우 진영싸움과 세대간의 갈등, 부양 부담 등이 이러한 님비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젊은층이 재미삼아 쓰는 실버존, 노인네, 틀딱충, 연금충과 같은 단어들도 노인혐오 분위기를 부추긴다. 정치권과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순리지만, 오히려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으니 상황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늙어가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간의 증오심과 갈등을 유발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집단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