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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 저술 ‘징비록’ 최초 책판 대량 발굴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4-06-03 20:04 게재일 2024-06-0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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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 조수익 경상관찰사 때 제작… 청주정씨 정봉진가서 기탁<br/>국학진흥원 “이번 발굴 209장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 지녀”
‘징비록(懲毖錄)’1647년판 권4의 13장 부분.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조선 중기 문신인 서애 류성룡(1542~1607 )이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의 최초 책판 209장이 발굴됐다.

3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징비록’은 조선 건국 후 최대 위기였던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과 도체찰사로 류성룡이 전쟁을 총괄 지휘하며 전란을 치뤄낸 생생한 경험을 정리한 회고록이다.

조선시대에 여러 판본으로 간행돼 널리 유통됐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져 1695년에는 일본판 ‘조선징비록’이 발행되기도 했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활자본(8권본)과 1647년 무렵에 간행된 목판본(16권본), 1894년 옥연정사에서 간행한 목판본(16권본) 등이다.

목활자본은 고서만 일부 남아 있고, 1894년 간행 목판본은 고서와 책판이 모두 남아 있다.

‘징비록’ 국회도서관 소장 판본.  /출처 국회도서관
‘징비록’ 국회도서관 소장 판본. /출처 국회도서관

이번에 발굴한 1647년 무렵 제작한 책판은 그동안 낱장 몇 장만 전해졌을 뿐이다. 이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이 시기에 제작된 책판을 대량 발굴한 것이다.

이 책판은 류성룡 외손자인 조수익(1596∼1674)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판각 작업을 시작해 제작한 것으로, 문경에서 보관돼 오던 것을 지난달 초 청주정씨 정봉진가(家)에서 기탁한 것이다.

간행 관련 기록은 이의현(1669 ~1745)이 지은 ‘운양잡록(雲陽雜錄)’에 수록돼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1894년 옥연정사 간행 책판(16권본)과 비교한 결과, 두 책판의 권차는 동일하지만 형태가 확연히 다름을 밝혀냈다”며 “17세기 중반 책판의 형태적 특징, 마구리 부분의 판각법 등으로 보아 이번에 발굴한 책판은 1647년 무렵에 새긴 책판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당대 판본과 비교해보면 책판의 마모와 계선(界線) 및 획의 탈락, 판심 부분의 어미(魚尾) 모양 등이 일치하는 것을 통해 그 근거가 더욱 명확해진다”고 설명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다”며 “이 책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 위기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과 함께, 목판의 제작을 통한 문헌의 보급이 그 바탕에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또 “이번에 발굴한 책판 209장은 ‘징비록’의 출판 인쇄사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임이 분명하다”며 “앞으로도 한국국학진흥원은 기록유산의 가치를 확산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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