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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가유산(國家遺産)’이라 불러 주세요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4-05-30 18:44 게재일 2024-05-3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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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홍보물.
지인이 ‘문화재(文化財)’를 ‘국가유산(國家遺産)’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보내 왔다.

신문기사를 읽으며 그제야 ‘문화재’가 일본에서 건너온 용어라는 걸 깨닫는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용어 변경을 하며 지난 5월 17일은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을 바꿔 새롭게 출범했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우리 산천의 야생초 대명사가 되어버린 나태주의 시 ‘풀꽃’처럼 앙증맞도록 예쁘고 사랑스런 우리 야생초마저 나라 뺏긴 설움에서 자유롭지 못해 ‘개불알’ ‘며느리밑씻개’ 같은 불미스러운 이름에 시달렸고 근대 우리말에는 해방 후에도 일본식 한자어 들이 스펀지에 물 스며들 듯 유입되어 지금까지도 이질감 없이 활용되고 있는 용어들이 많다.


나라 뺏겨 지배당한 36년의 흔적을 지우는 데는 100년도 모자란다는 교훈을 지금 우리는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일본은 19세기 이후 서양으로 세력을 뻗으며 ‘문명개화’를 화두에 두고 기존 한자어에는 없는 서양 개념들을 번역한 용어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 속에서 ‘문화재(文化財)’라는 용어는 당시 독일어 ‘kulturguter’를 번역하며 ‘문화’에 ‘재산’을 더해 생겨났다. 이 용어를 그대로 1961년 문화재관리국 직제를 공포하면서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일본 용어인 ‘문화재’와 같은 의미로 중국은 문물(文物), 대만은 문화자산(文化資産), 북한은 문화유물(文化遺物)이며 대한민국에서는 이제 국가유산(國家遺産)이다.


유네스코(UNESO)가 1972년 제정한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현재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유산(遺産)’이라는 개념을 써 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지난 60여 년간 법률·행정 용어로 폭넓게 쓰여 왔던 일본 용어인 ‘문화재’를 더는 쓰지 않고 국가기준에 부합하도록 ‘국가유산’으로 용어를 바꾼 것이다.


국가유산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안동본(간송본)과 상주본 두 권이 유일하다. 동일한 판본으로 밝혀진 두 권은 누가 어떤 개념으로 소장하고 있느냐에 따라 행보가 달라진다.


‘국가유산’의 개념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 거금을 주고 소장했었던 간송 전형필 선생은 1956년 ‘훈민정음 해례본’ 영인본(影印本) 제작을 위해 이 소장본을 흔쾌히 세상에 내놓으며 한글의 위상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문화재’ 개념으로 상주본을 소장하고 있는 배익기는 고문서 전문가가 감정한 감정가 1조원을 근거로 “1000억 원에 국가에 팔겠다” “박물관에 100억 원에 매매 의사를 타진하겠다” “‘제3의 인물’에게서 1000억 원 가량의 보상금을 받고 상주본을 넘기는 방안을 저울질 중이다”라며 아직까지도 책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가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당시 공약으로 “해례본을 국보1호로 지정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했지만 국보의 번호가 국가유산의 중요도나 가치 순으로 지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조차 모르는 그의 눈에는 1조원의 가치를 지닌 국보도 그저 재물로만 보이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보전에 힘쓰는 것은 온전히 후손을 위한 일이므로 결코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재화(財貨)의 개념이 강한 ‘문화재’를 이제라도 ‘국가유산’으로 용어를 바꿨으니 전통 문화에 대한 인식도 그만큼 달라지길 기대해 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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