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은 가정의 중요성을 고취하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개인과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건강가정기본법’에 의해 지정된 것이라 한다. 5월 5일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 등 가정의 구성원을 생각하는 날이 연달아 있는 탓에,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경제적 부담이 있는 달이다. 경제적 이유로 5월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더 나아가 가정을 꾸리지 않는 청년 세대가 늘어나는 시대에 가정과 가족의 범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지난주 전공 수업에서 학생들과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를 함께 읽었다. 소설은 요양 보호사 어머니의 집에 시간강사이자 동성애자인 딸이 자신의 애인과 함께 들어오며 시작된다. 어머니는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기 어렵고, 시간강사라는 불안정한 직업을 가졌으나 불의를 참지 못하는 딸의 성격에도 걱정이 앞선다. 딸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원망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주인공은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엄마를 향해 딸은 자신과 애인인 레인은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외친다. “가족이 뭔데? 힘이 되고 곁에 있고 그런 거 아냐? 왜 이건 가족이고 저건 가족이 아닌데”라는 딸의 말에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동성애자이자 시간강사인 딸은 우리 사회의 비주류다. 합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가정을 이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동성애자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기 어려우며, 갈수록 가속화되는 양극화 현상은 청년들에게 결혼에서 출산으로 이어지는 삶의 과정을 포기하게 만든다. 여기에 한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여전한 편견을 떠올리면, 우리 사회에서 가정이란 개념은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이성애자 부모와 아이들로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절절한 딸의 앞선 외침처럼 딸과 레인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점도 알고 있다. 머리로는 ‘딸에 대하여’의 딸과 레인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소설의 엄마도 그랬다. 젊은 시절 타인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환자 젠의 비참한 노후에 분노하지만, 젠과 겹치는 딸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자기 딸이 젠과 같은 쓸쓸한 노후를 맞이할지 두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에서 결국 엄마는 젠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키며 머리와 마음이 일치하는 삶을 이룬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엄마는 젠의 장례식장에서 조금 다른 일상과 “마주 서 있는 지금”만 생각하자고 다짐한다. 거창한 미래를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제와 한 뼘이라도 다른 내일만 생각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머리와 마음이 일치하는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삶과 마주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가 많아질 때 다양한 가정이 공존하는 진정한 가정의 달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