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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술·사랑이 사라진 자리 무엇이 남았나요?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4-02-01 18:20 게재일 2024-02-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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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br/><br/>앤드루 포터 지음·문학동네 펴냄<br/>소설집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한국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앤드루 포터(52)의 소설집 ‘사라진 것들’(문학동네)이 출간됐다.

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하고, 포워드 매거진,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 등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장편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 단편 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한 앤드루 포터가 내놓은 신작 소설집이다.

삶의 분기점에 이르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는 시선, 서정적이고 유려한 문체, 쉽게 잊히지 않는 긴 여운을 남기는 강렬한 엔딩으로 미국 현대 단편소설 미학의 정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앤드루 포터는 국내에 소개된 뒤 문학 팬들은 물론 많은 작가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사라진 것들’은 그런 앤드루 포터가 첫 번째 소설집 이후 15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소설집이다. 첫 번째 소설집으로 “무시무시한 작품집”(런던 타임스)이라는 평과 함께 “현재 미국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단편 작가”(인디펜던스)로 꼽힌 그는 15년을 지나오며 삶에 대한 더욱 깊은 통찰이 담긴 열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에게도, 한 사람의 삶에서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사라진 것들’의 가장 주요한 주제는 바로 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라진 것들’의 인물들은 가까이 있던 것들을 떠나보내고, 이후에 남겨진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사라짐은 때로 쓸쓸함을 남기고, 지나간 것들은 유난히 찬연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지금이, 아직 다가올 날들이 있다고 일깨우는 포터의 소설들은 우리의 마음에 깊고 넓은 파동을 만든다.

‘사라진 것들’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인생의 중반 단계에 진입한 화자들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소설집의 첫 문을 여는 ‘오스틴’에서 ‘나’는 한 10대 소년의 아이러니한 죽음을 두고 벌어진 윤리 논쟁에 합류하지 못하고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다”라고 독백한다. 젊은 시절을 지나며 어떤 일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의 목소리는 따뜻한 듯 쓸쓸하다.

‘넝쿨식물’에서 ‘나’는 미술가인 여자친구 마야와 작은 차고 아파트에 세 들어 살던 시절을 회고한다. 예술을 통해 ‘특별한’ 삶을 살기 위해 ‘나’를 뒤로한 채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마야가 예술가로서 활개를 펴는 대신 오래도록 암과 투쟁하는 ‘평범한’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그게 아마 인생에 펼쳐지는 보통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

‘사라진 것들’이라는 소설집의 제목 그대로, 이처럼 이 책에는 사라진 많은 것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촉망받던 연주자가 희귀질환으로 한순간에 잃어버린 재능이기도 하고(‘첼로’), 빛나는 청춘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꿈꾸던 미래이기도 하며(‘라인벡’), 한 부부의 사이에 잠시 머물렀을 뿐이지만 둘의 관계를 영영 바꿔버린 한 소녀이기도 하다(‘히메나’). 앤드루 포터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그런 사라짐을 통해 삶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를 어렴풋이 실감한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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