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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목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인권 활동’의 목표죠”

등록일 2023-12-04 20:04 게재일 2023-12-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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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br/>김용식 경북노동인권센터장
김용식 경북노동인권센터장.
김용식 경북노동인권센터장.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의 첫 문장이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당연한 권리를 말한다. 두 발을 딛고 사는 땅이나 한순간도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공기, 생존에 필수인 햇빛처럼 소중하지만 늘상 곁에 있으려니 하기 쉽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23 인권의식 실태조사’를 보면, 1년 전보다 인권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인식이 증가했다. 인권침해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는 대상은 경제적 빈곤층이었다. 인권은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김용식 경북노동인권센터장은 약자의 편에서 인권을 지켜온 사람이다. 김 센터장이 말하는 인권 활동의 목표는 피해자의 옆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지키는 일이다.

300여 순수회원으로 운영되는 몇 안되는 민간단체

노동문제 중심에 두고 인권 현안 해결 목표로 출발

월급 떼이거나 직장내 괴롬힘·성희롱·산재 피해 등

연간 민원 600~800건 중 80%가 일터에서 생긴 문제

변호사·노무사, 시·도의원들과 연결시켜 주기도 해

경북지역 인권 감수성은 대부분 영역서 현저히 낮아

국가인권위처럼 지자체 차원 인권증진 조례 제정을

 

-인권은 당연한 권리지만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요즘이다.

△곳곳에서 인권이 공격의 대상이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직장에서는 노동자가 괴롭힘을 당하고, 시설에서 장애인, 노인이 학대당한다. 정부의 존재 이유를 헌법에서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 즉 인권 보장을 분명히 하는데도, 현실에서 행정력은 작동되지 않고 사법기관은 여전히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한마디로 인권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와 같은 처지라 말할 수 있다.

 

-인권의 여러 종류 가운데 노동인권을 중심으로 내건 이유는.

△우리 사회의 인권 척도를 노동인권의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인권 문제는 기본적으로 한 사회 속의 구성원과 구성원 또는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 집단과 개인 등 다양한 층위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다양하게 제기되는 인권문제에 대한 접근 또는 이를 보장하기 위한 서비스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 즉 사람의 노동을 통해 발현된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인권센터라고 한 것이다. 노동인권센터는 노동문제를 중심에 두면서 지역과 사회 전반의 인권 현안을 함께 하겠다는 포부로 출발했다.

-경북노동인권센터는 어떤 사람들을 도와주나.

△월급을 떼인 노동자가 가장 많고, 직장에서 괴롭힘이나 성희롱 등을 당했거나, 해고나 징계를 당한 노동자, 산업재해 피해자들이다. 80%는 일터에서 생긴 문제이다. 다음으로는 장애인 학대, 보복성 징계나 해고를 당한 공익신고자들이 많다. 이외에도 학교폭력으로 찾아오는 학생과 부모, 석산 개발, 폐기물 소각장, 매립장 설치, 수해나 산불 피해 등 일상에서 위협받는 사람들이나 재난지역 주민들과도 함께한다. 1년에 들어오는 민원만 600~800건이다.

 

-그 많은 민원을 어떻게 상담하고 지원하나.

△일반적인 프로세스라면 불가능하다. 민원인 대부분이 행정기관의 문턱을 넘기지 못하거나, 노동조합이 없는 분들이다. 문턱을 넘는 것만 도와주면 스스로 해결한다. 변호사나 노무사, 시·도의원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나의 역량으로 모두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저 민원인이 됐다고 할 때까지 옆에 서 드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무리한 요구라고 판단되는 민원은 어떻게 하나.

△나는 판단하지 않는다. 오죽 억울했으면 나한테까지 왔을까를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내용도 있지만 왜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를 주목한다. 성장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피해를 당해오다 사건을 계기로 피해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 민원인이 본인이 그런 입장이 될지는 몰랐다고 말한다. 켜켜이 쌓인 문제가 발현된 것이다. 발현된 그 순간의 목소리를 지키는 것이 인권 활동의 목표이다. 물론 세 차례 이상 만나면서 신뢰가 쌓인 뒤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때도 있다.

 

-타지역과 비교해 경북 지역의 노동 인권 감수성의 수준은 어느 선인가.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인권 관련 지표 조사 등을 보면 대부분의 영역에서 낮은 수치를 기록하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에서 인권증진 조례가 만들어진 것이 2013년이지만,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은 전국에서 꼴찌였다. 경북의 인권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경북노동인권센터는 변호사와 노무사,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활동가 300여 명의 순수 후원으로 운영된다. 전국 대부분 지역의 노동센터는 조례에 근거해 지원받지만, 경북을 비롯해 몇몇 곳만 민간 단체이다.

 

-인권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

△1990년대 초반 서울 대학로 인근에서 근무했다. 당시는 길거리 검문검색이 일상이었는데, 누가 시민의 걸음을 멈춰 세우고 가방을 뒤지는 권한을 주었을까? 늘 고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세계인권선언문 읽기 모임을 안내하는 손바닥만 한 포스터를 보게 됐다. 199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 참가자들이 주축이었다. 국내에서 조직적으로 참가한 첫 세계인권대회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인권 인식은 폭력행위에 저항하는 자유권에서 사회권 차원으로 확장됐고 국가인권기구 설립 운동으로 이어졌다.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이 있다면.

△인권 침해를 당해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거나, 공익 제보를 원하는 분들이 우리 인권센터를 물어물어 찾아왔을 때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보람은 인권을 배우면서 함께 한 사람들과 국가인권기구 설립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되고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지켜보며 감격스러웠다. 물론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존재만으로 기여하는 바가 크다. 피해 당사자들은 강력한 몽둥이를 바라지만 국가인권위는 솜방망이를 크게 휘둘러야 강해진다. 인권 제도는 형벌 제도가 아닌데도 인권위는 지나치게 입증을 강조한다. 억울한 입장에 서서 51%만 그렇게 보이면 권고해야 한다.

 

-안타까운 순간을 목격하는 일도 많을 것 같다.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나 공익 제보자 대부분이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거나 위험한 인물로 낙인되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 그리고 사건으로 짚는다면 경주시체육회 철인3종경기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이다. 생전에 최 선수의 지인이 찾아와 사건을 접수해서 대응 방안을 찾던 중 최 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는데 최 선수가 상처받을까 조심하는 사이 사고가 나버렸다. 그 후 가해자들이 처벌받고, 국민체육진흥법의 목적이 “국위 선양”이 아니라 “체육인 인권 보장”로 변경되는 등 성과가 컸지만, 고인을 살리지 못해 안타깝다. 온갖 구설을 물리치고 끝까지 처벌을 원했던 최 선수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가해자들이 처벌받고 시스템이 바뀌어도 딸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다시는 그런 아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고 결심했고, 아직도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달 8일 열린 ‘발달장애인 노동자 노동실태 조사를 위한 구술 인터뷰 결과 발표회’ 장면.
지난 달 8일 열린 ‘발달장애인 노동자 노동실태 조사를 위한 구술 인터뷰 결과 발표회’ 장면.

-피해 정도가 경미한 경우는 어떻게 하나.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

△피해 정도는 따지지 않는다. 본인이 피해라고 하면 피해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상대적 약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 목소리를 낸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수많은 침묵이 강요될 것이다. 물론 가해자의 인권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그 과정에서 부풀림이 있을 수 있으니 늘 주의한다. 사회적 시스템으로 벌을 받아야 하지, 그 외의 것들로 배제되거나 벌에 준하는 일을 당해서는 안 된다.

 

-인권과 관련한 일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을까.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기다. 감수성이라고 하면 느낌이나 감성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인권은 인류사회가 변화 해오면서 만들어낸 가치이며, 지금도 확장되고 있는 변화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인식의 영역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중요한 일은 자신의 기준이 되는 영역을 넓히는 일, 즉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이 시대에 인권을 더 말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인권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다. 현재는 조례를 통한 전면적 수용과 개인적 수용의 갈림길에 있다. 개별적 구제를 통한 확산은 느리고 한계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지자체 차원에서 인권증진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가까운 대구에서 인권 기구가 폐지됐다. 학생 인권 문제로 교사가 고통당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러한 얘기들 자체가 반인권적인 이야기다. 인권은 누구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사람들이 가장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다. 인권이 흐릿해지는 지금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외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인권을 더 말해야 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지 하며 활동했지, 한 번도 뭘 이루고 싶다는 생각은 없이 지금까지 왔다. 그래도 한 가지를 말한다면 인권 침해를 당하거나, 공익신고로 고통받는 분들 곁을 지키는 노동인권센터에서 정년을 맞는 것이다.

 

 

 

김용식 센터장은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2000년에 포항에 내려와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포항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공단노동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담당했다. 그 뒤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상담 활동을 하며 인권 분야에 몸을 담그게 됐다. 도가니 사건이 영화로 알려지면서 장애 분야 인권지킴이, 국가인권위원회 장애분야 위촉강사로도 활동했다. 포항근로자종합복지관장,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집행위원장, 경북혁신교육연구소 ‘공감’ 부소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촉강사(장애 분야)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경북이주노동자센터 운영위원장, 경상북도장애인복지위원회 위원, 경북노동인권센터장을 맡고 있다.

 

/배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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