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정부가 의대 정원 확충을 진짜 실행한다면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다. 성과를 내길 바란다. 국민이 지지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정 의원의 이 글은 과연 진심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정부·여당이 만약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총선 득표용’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誤算)이다.
의대정원 확대는 우선 가장 민감한 이슈인 ‘사교육비 뇌관’을 건드리기 때문에 교육계에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오래전부터 수험생은 물론, 대학 1~2년생,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의대 열풍’이 불어왔다. 최근에는 직장인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정원을 파격적으로 증원할 경우 교육계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의대 블랙홀에 빠지게 된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18년간 어떤 정부도 의대정원 확대에 손대지 않았던 이유를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미 사교육비 뇌관의 불씨인 수도권 입시학원들이 ‘의대 마케팅’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들로선 의대정원 확대가 ‘황금알을 낳는 신시장’으로 보일 것이다. 2024학년도 전국 39개 의대의 신입생 모집 인원은 총 3천16명(수시 1천872명, 정시 1천144명)이다. 만약 의대 정원이 2025학년도부터 1천명 늘어나면 현재 정원보다 모집 인원이 33%나 증가한다. 성적이 상위권인 초·중·고 학생들과 N수생(재수생 이상) 상당수는 입시학원의 새로운 수요자가 될 것이다.
수험생들이 많은 영향을 받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킬러(초고난도) 문항 출제 배제로 수능부담이 줄었는데, 의대까지 증원되면 재수생이 더 몰릴 것’, ‘SKY 자연계열 학생들은 상당수가 반수에 도전할 것’ 등의 글이 올라온다. 커뮤니티 글처럼 대학 이공계열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대거 재수시장에 뛰어든다면 날벼락은 대학들이 맞는다. 서울대를 예로들면, 올해만 해도 신입생 중 휴학생이 418명이나 되는데 상당수가 의대진학이 목표라고 한다.
교육전문가들은 “이미 확정된 2028년 대입개편(정시 40%)에다 의대 정원확대까지 더해지면 N수생 확대, 사교육비 부담 등의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교육계뿐만 아니라 과학·산업계도 우수인재들이 너도나도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면 연구인력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충분히 이해된다.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작년기준 인구 1천명당 의사수는 2.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수준이다. 그러나 의대정원 확대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의사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필수의료 분야(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등)로 의사들을 유인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덜렁 의대정원만 늘릴 경우,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같은 의료계의 고질적인 현안은 해결하지 못한 채, 인턴과정도 거치지 않은 피부·미용 개원의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