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br/>김정희 대구지방기상청 기상주사
태풍 시 행동 요령으로 중요한 것은 날씨 정보를 청취하며 기상 상황을 지속해 파악하는 일이다. 최근 태풍이 북상할 때, 경북 동해안이 가청권인 라디오를 청취했다면 이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채널을 불문하고 많게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태풍의 이동 경로와 전망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며 피해 최소화를 당부한 포항기상관측소 김정희 소장이다. 기상 현장의 최전선에서 23년간 날씨 서비스를 제공해 온 기상 전문가이다.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상 정보를 더 밀착해서 제공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주민들과 소통한다. 지난 9월 1일 자로 대구지방기상청으로 자리를 옮겼기에 지금은 ‘전(前) 소장’이 된 그녀를 지난달 말, 송도 솔밭에 있는 포항기상관측소에서 만났다.
기상 현장 최전선에서 23년간 날씨 서비스… 태풍 행동요령·기상정보 등 제공, 지역민과 소통
80년 역사 ‘포항기상관측소’ 위치한 송도 중심으로 호미곶 등 5곳 무인 기상관측장비 설치·운영
2004년 국내 첫 세계기상기구 지정 ‘고층 기후관측소’ 등록 · 1994년 국내 유일 ‘오존관측소’로 인정받아
자연현상 과학적 접근으로 오류도 발생, 주민 항의도 있지만 “수고했다” 한마디에 힘듦 사라져
-포항 날씨의 기준은 포항기상관측소가 위치한 송도라고 들었다.
△흔히 방송에서 나오는 ‘포항의 날씨’는 관측소에서 나온 값이다. 이외에 호미곶과 구룡포, 기계, 죽장, 청하에 무인 기상관측 장비가 있다. 포항기상관측소는 1943년에 운영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기상관측사 중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처음에는 두호동에 있다가 60년대 송도로 이전했다. 국내에 80년 기상관측 역사를 가진 곳은 많지 않다.
-밖에서는 몰랐는데 들어와 보니 잔디밭이 상당히 드넓다.
△대기 상층의 기상 상태를 관측하는 ‘고층기상관측’을 위해서다. 관측장비를 실은 풍선을 날리려면 부지가 넓어야 한다. 포항기상관측소는 지난 200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계기상기구(WMO)가 지정한 고층 기후관측소로 등록됐다. 고층관측소가 되려면 관측의 연속성, 관측의 정확성, 관측 횟수와 고도, 관측기록 등의 항목별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포항기상관측소는 60여 년 동안 5천여만 회의 고층관측 기록을 가진 고층관측의 메카이다.
-기상관측소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매시간 기온과 습도, 강수량, 바람 등 기상 상황을 관측해서 전문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자료는 실시간으로 모여 국내외 정보통신망으로 공유한다. 지상관측 외에도 고층관측은 하루 네 차례, 오존관측은 매주 한 차례 수요일에 실시한다. 악천후일 경우 수요일 전후의 최적 일을 택한다. 이외에도 해상관측 등을 하며 특이기상 상황은 상시로 관측한다. 위험 기상 시에는 관계기관이나 언론과 협업하고 시민들의 전화나 방문도 처리한다. 태풍이 북상하는 저녁이면 전국 기상청에서 심심찮게 받는 전화가 있다. 태풍 사라가 몇 년도에 왔는지에 대한 문의다. 근무지를 옮겨도 똑같은 전화가 걸려 오는 걸 보면 사라에 대한 기억이 깊게 남은 것 같다. 이러한 일들을 주야간 교대근무로 처리하므로 관측소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고층관측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관측장비를 풍선에 묶어 하늘로 띄운다. 하늘에서 풍선이 터졌을 때 천천히 내려오도록 낙하산을 매달고, 풍선에 가스를 주입하고, 넓은 야외로 이동해 기구를 날리는데 준비 과정만 한 시간이 넘는다. 만약 풍선이 터지거나 정해진 고도까지 못 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가스가 주입된 풍선은 성인 키보다 커서, 바람이 많이 불면 풍선을 붙잡고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다. 관측소에서 비양 지점까지 백 미터 넘게 포복 자세로 기어갈 때도 있다.
-고생스럽게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만 하나.
△고층기상 관측용 자동 발사 장치가 개발되어 작년에 도입되었다. 이 장치는 정해진 시각에 자동으로 풍선에 가스를 주입해 사람 손이 닿지 않아도 하늘로 날려준다. 하지만 안정적인 기상 상황이 아닐 때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고, 오존관측의 경우 센서를 달아야 해서 수동 관측만 가능하다. 오존관측은 고층관측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롭다.
-오존관측은 왜 하는 것인가.
△대기 중의 오존은 성층권 오존과 대류권 오존으로 구분된다. 성층권 오존은 유해 자외선으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고,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지구의 기후변화에 영향을 준다. 반면 대류권 오존은 주로 배기가스로 알려진 질소산화물 등에 의해 생성되며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오존의 90%가량은 성층권에 분포되어 있어 성층권의 오존 관측은 기후변화 감시에 중요하다. 포항기상관측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세계기상기구(WMO)가 인정한 오존관측소이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30여 년간 운영 중이다.
-포항기상관측소의 국제적 위상이 그 정도인지 몰랐다. 말씀을 들어보니 고층관측과 오존관측은 방식이 비슷하다.
△존데(Sonde, 전파를 이용한 기상 관측 기계)를 풍선에 매달아 하늘에 띄우는 방식은 동일하다. 다만 오존관측은 사전 테스트와 당일 테스트를 모두 거쳐야 하므로 일반적인 기상관측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과 전문성, 세심한 관측 기술을 요구한다. 고층 관측용보다 풍선이 커서 강풍이 부는 날에는 띄우기까지 위험한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최소 2명이 팀으로 움직이며 최종 관측자료 생산까지 담당한다. 오존존데 시약 제조와 고층 관측용 헬륨가스 취급 관리도 병행하고 있어 전문성이 요구된다.
-하늘에서 임무를 다하고 떨어진 존데는 어떻게 되나.
△풍선이 하늘에서 터지면 낙하산을 펼치면서 떨어진다. 보통 해상으로 떨어지지만, 간혹 육상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혹시나 시민들이 놀랄까 봐 설명서와 연락처를 붙여놓는다. 그래도 찜찜한지 신고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존데를 발견한다면 분리해서 버리면 된다.
-송도에서는 관측기구를 매단 대형 풍선이 날아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겠다.
△주민들은 자주 봐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간혹 관광객의 신고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다. 기상장비를 매단 풍선은 희귀한 볼거리인 만큼 포항 송도로서는 굉장한 자산이라 생각한다. 고층관측 기준시간은 08시 20분, 14시 20분, 20시 20분, 02시 20분으로, 그즈음 송도해수욕장 인근이라면 하늘을 유심하게 살펴보시길 권한다.
- 직원들의 노고에 비해 기상청에 대한 국민 신뢰는 낮은 편이다.
△ 일상생활은 날씨와 불가분의 관계니만큼 국민적 관심은 큰데,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일에는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느 농민은 예보에 없던 소나기로 콩 농사를 망쳤다고 항의를 하고, 어민들은 날씨가 좋은데 왜 특보를 내려 출항을 못 하게 만드냐고 따져 든다. 관측소에서 송도삼거리만 나가도 날씨가 다르고, 해상은 육지와 완전히 다른 기상이 전개된다는 걸 충분히 설명해 드리는 수밖에 없다. 기상청은 국민 신뢰 회복을 목표로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 문구를 늘 마음에 새긴다.
- 기상청 사람들의 직업병도 있을 것 같다.
△ 하늘을 수시로 쳐다본다. 구름 모양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1분 전에 쳐다본 구름 모양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근무지를 자주 옮기다 보니 주말부부이다. 보통 가족끼리 안부를 물을 때 “밥 먹었냐?”고 묻지만, 우리 가족은 “거기 날씨 어때?”부터 묻는다. 10년 넘게 교대근무를 하면서 굳혀진 생활 패턴도 있다. 지금은 교대근무를 안 하는데도 관측 시간만 되면 여전히 긴장한다.
- 기상청에서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 가끔이지만(웃음) 칭찬받을 때가 있다. 수고했다, 기상청이 있어 태풍을 안전하게 지났다는 한마디에 힘듦이 스르륵 녹는다. 울릉도에서 3년을 근무하고 나오면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분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계속 여기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 포항에 와서는 태풍을 대비한 유관기관 긴급대책회의에 참석해 힘을 보탰다. 또 장기예보를 분석해 불빛축제 등의 행사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도와 지자체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기후변화로 날씨의 중요성은 커졌다. 기상 전문가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날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태풍이 동해안으로 빠져나가면 태풍이 지나갔다고 안도하지만, 울릉도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울릉도에 가보니 주민들이 기상예보에 소외감을 가지고 있었다. 울릉도기상관측소장으로 재직하며 울릉도, 독도에 대한 맞춤형 기상예보 시스템을 구축해 큰 호응을 얻었다. 오지나 벽지일수록 밀착형 기상서비스가 절실하다. 변방의 장수가 유능해야 나라가 튼튼하다는 말처럼 기상청의 역할이 필요한 현장에 더 관심을 두고 살필 것이다.
김정희 대구지방기상청 기상주사는
환경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환경대기학을 공부했고, 2000년에 기상청 사람이 되었다. 국가직 공무원이라 여수와 부산, 안동 등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렇게 힘든 일인 걸 알았다면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지난 23년간 최일선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기상 서비스를 제공했다. 2018년부터 3년간 울릉도기상관측소장을 지낸 뒤 2021년부터 2년간 포항기상관측소장을 지냈으며, 지난 9월 1일 자로 대구지방기상청으로 발령받았다. 우리나라 최동단 섬인 울릉도와 독도에서 위험기상 대응강화를 위해 ‘울릉도·독도 맞춤형 태풍기상브리핑’과 ‘독도기상정보표출시스템’을 구축했다. 지자체와 방재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울릉군과 포항시에서 방재업무유공 감사패를 받았다. 울릉도의 힘든 기상 상황을 떠올리며 쓴 시 ‘그해 겨울’로 기상청 문예전에서 시 부문 1위를 받았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지나간 겨울 지나/ 다시 봄이 오면/ 가족 실은 배도 고향 찾아 돌아오고/ 바다 건너 찬바람이 꽃밭이 되어 온다.” 헌신적인 공무원에게 주는 대한민국공무원상을 올해까지 3년 연속 국민에게 추천을 받았다. 기상청 내부가 아닌 국민에게 추천을 받는 일은 드문 일이다.
/배은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