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을 그리다 어반 스케치 여행 ④ 호미곶
원시의 바람을 느끼고 싶다면 호미곶으로 가야 한다.
망망한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갈기를 휘날리며 한반도의 동쪽 끝으로 몰려온다.
바람이 거세 쌀농사가 힘들었기에 온통 보리밭이었다.
호미곶 처녀는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을 못 먹는다고 했다.
호미곶 구만리에 보리가 피어나면
초록의 물결이 온 누리를 뒤덮는다.
차가운 땅 밑에서 키워 온 생명의 기운은
사람의 마음밭도 초록으로 물들인다.
이른 봄 샛노란 유채꽃이 피어나면
하늘색과 바다색도 더 짙어진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유채꽃밭으로 뛰어들어
한 송이 꽃이 된다.
세워진 지 백 년이 지난 순백의 등대는
일몰에 불빛을 켜고 일출에 불빛을 끈다.
먼바다를 향해 빛을 뿌리는 등대가 있어
호미곶 밤바다는 쓸쓸하지 않다.
호미곶 앞바다는 아득한 옛날부터 고래의 바다였다.
사람이 오기 전에 고래가 평화롭게 다니고 있었다.
출산한 어미 고래가 미역을 먹으러
얕은 바다까지 들어왔다는 옛이야기도 전한다.
한반도의 동쪽 끝 호미곶에 가면
하얀 파도의 노래를 들려주려
고래 한 마리가 다가오리라.
임주은
1982년 포항에서 태어났으며 대구가톨릭대 공예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2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서양화 작가로 참여했다. 현재 포항문화재단 이사, 포항청년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경북청년작가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