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 곳곳에 자동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특공대 요원이 시민을 감시하는 무서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1980년 비상계엄령 사태 때의 장갑차까지 길거리에 등장하자 시민들은 ‘연쇄 묻지마 살인’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인터넷에 살인예고가 연이어 올라오면서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묻지마 살인과 살인예고 범죄가 개인의 질병이나 유전적 원인이라는 분석이 다수이지만, 그 원인을 사회병리에서 찾는 전문가도 있다. 우리사회에서 격화되고 있는 진영싸움이 집단적 증오심을 키우면서 범죄로까지 비화한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분석이다.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가 대유행했을 때 대구경북은 집단증오의 표적이 된 적이 있다. 언론을 통해 표출된 증오였지만, 당시 시도민들은 ‘묻지마 살인 범죄’ 버금가는 고통을 겪었다. 그중에서 ‘증오정치의 선동가’로 불려지는 김어준의 말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2020년 3월 6일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져 대구가 고통받을 때 자신이 진행한 라디오를 통해 “우리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이자 신천지 사태”라고 말하며, 코로나 발생원인을 대구시민 탓으로 돌렸다. 그 5일 전에 민주당 한 청년위원이 “지금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고 한 말에 대한 후속타였다. 그 후 좌파여류시인인 김정란은 페이스북에 “대구는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 소속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 거느리고”라는 글을 올렸고, 한 민주당 중진은 ‘대구봉쇄’를 입에 담았다.
좌파 진영의 이러한 증오표출에 대해 당시 대구시민들은 분노로 상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발적 격리를 하면서 대구봉쇄를 거론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외신들은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성숙하고도 침착한 대응을 특종기사로 다루면서 격려했다.
좌파진영은 지금도 증오심을 무기로 ‘진지전(陣地戰)’을 유발하고 있다.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과 양이원영 의원의 노인폄하 발언에 대해서는 같은 당내에서조차 ‘개딸들의 홍위병’등을 운운하며 비난하고 있다.
좌파진영이 주도하는 진지전은 우리사회 전체의 증오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진지전은 무솔리니 정권에 대항했던 좌파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내놓은 헤게모니이론에서 나온 용어다. 그람시는 헤게모니 이론을 설명하면서 ‘권력이 진지전을 통해 상식적인 것을 비상식적인 것으로 만들고, 비상식인 것을 상식적인 것으로 만들어 국민을 통제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정확하게 짚은 이론이다.
미국의 대표적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연말 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는 1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국민이 느끼는 ‘정치적 갈등’ 수준이 1위로 나타났다. 좌파와 우파 양진영이 상대를 향해 쏟아내는 막말과 모욕적인 언사는 갈수록 거칠어져서 진지전에 관심 없던 국민까지 증오의 늪에 빠트리고 있다. 정치인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갈등과 분열의 저질 정치를 계속하는 한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은 치유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