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문화유산 활용은 더 잘 보존하고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

등록일 2023-07-31 18:52 게재일 2023-08-01 16면
스크랩버튼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 대표<br/>최경남
최경남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 대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오래된 논쟁이다. 보존에 가치를 두는 쪽은 허울 좋은 활용은 훼손과 다름없고, 어떤 방식의 활용도 문화재 본연의 가치를 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활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문화재 보존은 문화를 박제하고 화석화한다고 비판한다. 끊임없이 변동하는 문화의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보존과 활용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정부의 문화재 정책은 보존에서 활용으로 흐르고 있다.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과 ‘활용’이라는 단어가 병행하는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의 최경남 대표를 만났다. 칠불암을 활용한 프로그램으로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지역 문화재활용 우수사업 명예의 전당에 오른 곳이다. 최 대표와 약속을 잡고 찾아간 사무실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특유의 끈끈함과 활력이 감돌았다.

 

국보 보유 사찰 ‘칠불암 5감(感) 힐링체험’은

7개 스토리를 오감으로 버무린 융복합 체험 행사

지역 예술가들이 모든 과정 동행하며 특별한 공감

3년 연속 우수사업 선정 문화재청 명예의 전당에

전통 산사 만의 맥이 이어지는 매력 전하고 싶어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이 갖는 차별성은

콘텐츠 개발 전문단체로 감성형 프로그램에 중점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 참여 참가자와 교감 중시

경주는 다양한 유적에도 지나치게 신라에만 집중

관광객 취향 반영해 관광지 세분화되고 분산돼야

내년 현재 복원 중인 경주읍성 주제 재조명 준비

 

-‘칠불암 5감(感) 힐링체험’의 참가자 만족도가 높다고 들었다.

△문화재청이 지원하는 전통산사문화재 활용사업 6년 차에 접어드는 사업이다. 2019년부터 3년 연속으로 지역 문화재활용 우수사업으로 선정되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경주시 담당 공무원과 상을 받으러 갔는데 문화재청장이 수여하면서 “잘 받기 힘든 상입니다.”라고 했다. 전국에 400개 넘는 문화유산 활용사업이 있지만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사업은 1년에 한두 팀 나올까 말까라고 한다.

-답사와 공연 관람이 혼재하는 프로그램인가.

△비슷하지만 하나가 빠져있다. 칠불암의 ‘7’을 스토리텔링 해서 문화재, 숲, 명상, 예술을 5감으로 풀어낸다. 초기에는 답사로 알고 오거나, 체험비에 대해 “문 없는 사찰에 가는데 왜 돈을 내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프로그램은 칠불암의 7개 스토리를 다섯 가지 감각으로 버무린 융복합 문화재 체험 행사다. 중요한 것은 예술인의 감성으로 풀어내는 문화유산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지역 예술가들이 모든 과정을 동행하며 두런두런 대화할 수 있는 것도 특별하다.

-지역 예술가들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지나.

△칠불암 가는 길 내내 동행한다. 해설자만 있는 기존 답사와 달리, 예술인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함께 한다. 30여 명의 지역 예술인과 문화계 인사가 1인 3역을 하며 함께 움직인다. 칠불암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50분이지만 전체 운영은 5시간이 걸린다. 출발하기 전 명상부터 시작해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칠불암 주지 스님과의 만남도 있다. 한 호흡 가다듬고 천천히 하산하면서 원효 스님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과 요석 공주와의 사랑을 담은 연극을 볼 수 있다. 공연은 20분 정도로 주제만 전달하도록 구성했다.

-문화유산 활용 대상으로 칠불암을 선택한 이유는.

△칠불암은 남산 유일의 국보를 보유한 사찰로, 신선암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압권이다. 물도 전기도 부족한 곳이지만 공양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스님이 직접 다려 주시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칠불암을 올라가는 초입에는 ‘칠불암 올라가는 짐’이 있고, 암자 마루 밑에는 ‘내려가는 짐’이 있다. 누구든지 마음 내키는 만큼 짐을 옮겨준다. 객도 없고 주인도 없는 모든 이들의 공간인 셈이다. 사찰이라고 하면 불국사처럼 큰 사찰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처럼 작은 산사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전통 산사의 맥이 이어지는 칠불암의 매력을 전하고 싶었다.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이 주최하는 '칠불암 5감 힐링체험' 참가자들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이 주최하는 '칠불암 5감 힐링체험' 참가자들

-경주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1990년대 말 보문단지 야외 공연팀 일원으로 경주에 왔다. 당시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일일이 뵙고 찾아다니며 배워야 하는 정순임, 정경호, 주영희, 이성애 선생 같은 쟁쟁한 대가들이 한자리에 계셔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판소리와 아쟁, 가야금, 대금 등 각 분야 대가가 모였으니, 무대는 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거기다 보문단지 공연장은 너무 아름다웠다. 경주 사람들은 늘 봐와서 귀한지 모르겠지만 대가들의 공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무대는 드물다. 아쉽게도 상설 공연은 끝났지만, 그때 인연으로 지금까지 경주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국악인으로 활동하다가 문화유산 활용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고등학생 때 기타를 배우러 갔다가 장구에 홀려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장구 소리가 천둥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장구를 치면 목탁 소리처럼 편안해지기도 했다. 국악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동시에 사람과 만나는 도구이다. 예술이란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이고 평생 가지고 갈 나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예술인에게도 일이 필요하고 그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늘 바라왔다. 보문단지에서 공연하던 팀이 흩어지고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강사지원사업 국악 강사로 활동했다. 경북지역 대표로 문체부 지원정책에도 참여했고, 대한민국 국악 강사 협의회를 이끌기도 했다. 여러 분야 예술인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무대를 시도했고, 이 정도면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괜찮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내가 가진 재능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를 바라면서 예술인의 감성으로 풀어내는 문화유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2017년에 설립해 이듬해부터 ‘칠불암 5감 힐링체험’ 행사를 시작했고 2020년 사단법인으로 허가받았다.

-경주의 문화유산 활용단체 가운데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이 갖는 차별성은.

△경주문화원과 신라문화원,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경주향교, 서악서원 등 10여 곳에서 문화유산 활용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 연구원은 콘텐츠 개발 전문 단체로 주로 감성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사업에 참여한다는 점이 강점이다. 참가자와의 교감을 중시하며 체험객의 특성 파악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재는 유지, 보존되어야 한다고 인식된다. 문화재의 상품화와 관광객 유입으로 문화재 훼손을 우려하는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10여 년 전부터 문화재청은 ‘최고의 보존은 활용’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활용사업을 권장하고 있다. 문화유산 활용사업은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아닌 숨겨지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위주로 진행한다. 또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모인 대상자를 위해 진행한다. 사업의 첫 번째 목표는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이다. 그다음은 닫힌 문화재, 숨겨진 문화재를 개방하고 알리기다. 활용사업을 하기 전 향교나 서원은 춘향대제와 추향대제 그러니까 1년에 두어 번 개방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빈집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너져 내린다. 방문객을 맞으면서 건물의 수명이 연장된 셈이다. 이처럼 문화유산 활용사업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더 잘 보존하고 제대로 향유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것이 활용사업의 진정성이다.

-사업을 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국비 사업이라 매년 심사를 받아야 한다. 보조사업의 특성상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른다. 어제도 서류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새웠다. 프로그램의 기조는 바뀌지 않지만, 세부 사항은 매달 개선하고 체험객의 성향에 따라 내용을 조정하는 일도 끝이 없다. 체험 물품도 직접 제작하고 모객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가치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광주에 우리처럼 명예의 전당에 오른 월봉서원 행사가 있다. 사업이 성공하고 체험객이 몰리면서 담당 공무원이 특진하고, 문화재활용팀이 독립됐으며, 교육체험관이 지어졌다. 경주도 그렇게 되리라 기대한다.

-앞으로 더 활용하고 싶은 경주의 문화유산이 있나.

△경주에는 문화유산이 다양하지만 실제로 발길이 모이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관광객의 다양한 취향이 반영되도록 관광지가 세분되고 분산되면 좋겠다. 신라에 푹 빠져 경주에 왔지만, 막상 와보니 지나치게 신라에만 집중하고 있다. 경주에는 신라 말고도 주민들과 함께해 온 유적지가 많다. 지금까지 조명을 덜 받은 문화유산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다. 현재 복원 중인 경주읍성은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담은 곳이다. 경주읍성을 주제로 ‘경주읍성 생생 나들이’를 진행한 바 있고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 개선된 프로그램을 선보이려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경주의 숨은 명소는.

△사업을 하면서 보니 경주에 숨은 명소가 많았다. 배리 삼존불입상과 옥룡암 탑곡마애불상군, 삼릉숲, 감실할매부처라고 불리는 불곡마애여래좌상도 좋아하는 곳이다. 말하고 보니 모두 남산인데, 남산은 굳이 등산이 아니라도 둘레길만 걸어도 좋다. 동남산과 서남산을 잇는 셔틀버스가 있다면 더 많은 이들이 둘레길을 찾을 것이다.

-수많은 경주의 명소 가운데 문화유산 활용사업의 첫 발을 뗀 곳이 남산이다. 최경남 대표에게 ‘경주 남산’은 어떤 곳인가.

△‘나를 만나게 해주는 곳’이다. 신라의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곳. 신라를 모두 담았다고 해도 될 만큼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고청 윤경렬 선생을 비롯해 남산을 알리고 지켜온 어른들이 계신다. 미약하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뜻을 이어가고자 한다.

 

최경남 대표는

대구예술대학교에서 한국음악을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에서 국악초등교육을 전공했으며, 동의대학교 스토리텔링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진주검무, 처용무 전수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강사지원사업 국악 강사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국악 강사 협의회장을 역임했다. 신라만파식적보존회가 주관하는 ‘경주세계피리축제’와 신라처용무보존회의 ‘경주시 문화의 날’ 축하공연, 경주문화원의 ‘문화재 야행’등을 기획·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로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을 설립했다. 전통산사문화재 ‘칠불암 5감 힐링체험’과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 ‘오래된 미래’, 전수교육관 활성화 사업인 ‘똑똑한 문화재 열려라 참깨’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배은정 1974년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사학과 졸업. TBC·포항MBC·경북교통방송 작가. ‘포항문화의 상징과 공간’ 공저

/배은정 작가

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