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br/>안성용 사진가
여관의 사전적 의미는 ‘여행객이 묵는 집’이다. 누군가에게는 어쩌다 한 번 머무는 공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거듭 돌아오는 장소일 수 있다. 어떻든 간에 떠나는 자들의 공간인 여관은 여인숙을 밀어내고 한 시대를 풍미하다 지금은 신축 숙박업소에 밀려 사라졌거나 후줄근한 이미지로 연명한다. 포항시 남구 포스코대로 436번지에도 시류를 놓쳐버린 여관이 있었다. 과거에는 여행객이 묵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지금은 예술이 묵는 곳이 된 ‘형산장여관’이다. 시간의 더께를 그대로 간직한 공간은 예술과 어우러져 상상 이상의 공간이 됐다. 형산장여관을 ‘ART436’으로 재탄생시킨 문화예술협동조합 ‘잇다’의 안성용 대표를 만났다. 그는 30년 넘도록 송도의 시간을 렌즈에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포항 송도 30년 세월 카메라 렌즈에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액자 속 작품을 설치미술과 결합 여러 장르로 표현
구룡포의 해도동의 1970년대 낡은 ‘형산장여관’을 갤러리 ‘ART436’으로 재탄생… 작가들 작품 전시·관객과 소통 공간으로
사진은 시간을 가두는 일, 엉뚱한 장면서 새로움·신선함 느껴… 요즘, 동빈대교 교각 올라가는 모습 기록에 전념
-낡은 여관은 어떻게 갤러리가 됐나.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으로 지원받고 나머지는 예술인들이 십시일반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허가한 단체는 전국에서도 드문 것으로 안다. 지난해 인가를 받고 꿈틀로 인근의 비어있는 건물을 수소문한 결과, 포항의 스토리를 간직한 건물을 찾았지만 건물주는 예술가들에게 임대하기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매매하길 원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비어있던 형산장여관과 연이 닿았고 포스코 집수리 봉사 단체와 예술인이 힘을 모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낡고 거친 그대로의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별다르게 덧댄 건 없고 벽을 턴 정도이다. 처음에 들어가 보니 10년 전 달력이 그대로였고 천장에서는 빗물이 샜다. 10개 넘는 객실마다 침대와 화장대, 화장실의 세면대와 양변기를 뜯어내니 쓰레기양이 어마어마했다. 원형을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최대한 손을 덜 댔다. 전시장이라면 하얀 벽이 기본이지만 부서진 벽돌을 그대로 두었다.
-칠이 벗겨진 간판도 그대로다.
△사실 초기에는 관람객뿐 아니라 일부 회원들도 민망하다고 간판을 떼버리자고 했다. 여관에 들어가는 걸 누가 보고 오해라도 하면 어쩌냐는 말도 하더라. 철거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한번 파괴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다들 포항역을 아쉬워하지 않나. 포항역은 포항 시민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역사는 한번 지워지면 복구가 안 된다. 오래된 것은 파괴할 것이 아니라 고쳐 써야 한다.
-갤러리가 되기 전 형산장여관의 스토리를 들은 바 있나.
△형산장여관은 1970년대 만들어졌다. 형산큰다리 건너기 직전에 위치해 포스코 협력업체나 연관업체 직원들이 출장와서 묵었다고 한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지하 주점도 제법 돈을 끌었다고 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더 좋은 숙박시설이 생기면서 이용객이 줄었다.
-형산장여관을 갤러리로 만든 주축은 문화예술협동조합 ‘잇다’이다. 예술가들이 협동조합을 조직한 이유는.
△ 작가들에게 늘 아쉬운 것은 관객과 만나는 공간이다. 규격화된 공산품은 온라인으로 봐도 상관없지만 예술품은 실물을 영접해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작가들이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판매를 통해 적게나마 수익을 창출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ART436’은 작가들의 필요를 모두 담은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작가 개인은 이루기 어려워도 모이면 힘이 커진다.
-기존 전시 공간으로는 부족한 편인가.
△50만 인구라면 최소 50곳의 전시장이 있어야 한다. 포항에는 시립미술관, 문화예술회관, 중앙아트홀, 문화예술팩토리(북구청), 꿈틀로 스페이스298 등의 전시장이 있다. 이외에도 몇몇 있지만 예술을 바라보는 형편없는 시각을 드러낼 뿐이다. 시립미술관은 한국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공공미술관의 역할이 있다. 지역 작가들이 전시하기 좋은 곳들은 기획전만 하거나 원하는 일정을 잡기 어렵다. ‘ART436’은 지역 작가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대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7회 정도 전시를 했다. 현재는 포항예술문화연구소의 정기전 ‘시선의 경계’가 열리고 있다.
- ‘ART436’이 된 형산장여관에 숙박객 대신 예술가들이 묵는다고.
△ 1층은 갤러리이고 2~3층은 입주작가 작업실이다. 회화와 조각, 사진, 영상, 디자인, 설치, 문학 등 전 장르의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 입주작가는 공모를 통해 모집했다. 월세는 10~15만원으로 전기나 수도요금은 조합의 프로젝트를 통해 충당한다.
-문화예술협동조합 ‘잇다’의 특별한 운영 원칙이 있나.
△ 특별한 것은 없다. 예술품을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열려있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참여한다. 사진을 하다 보니 주위에 사진가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러 장르의 작가들이 모이니 액자에만 갇혀있던 작품이 설치미술과 결합하고 장르를 넘나들면서 작품이 풍부해졌다.
-궁극적인 예술 활동은 예술가 개인의 몫으로 여겨진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문이 항상 열려있는 나의 꿈틀로 작업실은 동네 사랑방이다. 손님이 오면 커피를 내려주는데 종이컵 수거함이 금세 꽉 찬다. 하지만 그런 만남 속에서 협업 프로젝트가 나온다. 나의 작업을 위해서는 따로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낮에 사람을 만나느라 여유가 없는 날은 밤늦은 시간을 빌려와야 한다.
-30년 넘게 포항 송도를 렌즈에 담아왔다. 요즘도 송도를 촬영하나.
△강의가 없을 때는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송도를 어슬렁 거린다. 대부분의 사진 촬영이 송도 해변이나 송도의 뱃공장 주변에서 이뤄진다. 계절마다 아침저녁으로 풍경이 다르고 찾는 이들도 달라 변화무쌍하다. 뭐 그렇게 찍을 것이 많냐고 하지만 매일 찍는 사람이 더 촬영할 거리가 많다. 요즘은 동빈대교 교각 기둥이 올라가는 모습이 주요 기록 대상이다.
-송도에선 너나없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가의 렌즈가 향하는 곳은 일반과 어떻게 다른가.
△사진가는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이 드러나야 한다. 내가 다른 걸 찍는다면 그건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을 수용하는 방식이다. 사진을 찍는 순간 시간은 정지된다. 사진은 시간을 가두는 일이다. 자전거를 타는 풍경을 찍는다고 치자. 어디든 렌즈를 들이댈 수 있지만 자전거의 뒤를 표현한다면 곧 사라지는 시간이 개입된 것이다. 대상에 따라 시간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매 순간 고민한다. 그리고 주목하는 또 하나는, 대상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내용이다. 나는 한 공간에서 다른 커뮤니케이션이 생성되는 체계를 주목한다. 같은 공간 속의 인물들이 동일한 목적에 충실한 장면이 아니라 공감대가 깨진 상황을 포착한다. 다소 엉뚱하고 생뚱맞은 장면이 던지는 새로움과 신선함을 즐긴다.
-송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작가는 흉내 낼 수 없는 무엇을 해야 한다. 지난 시간을 담은 사진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송도해수욕장의 전성기는 60~70년대였다. 내가 포항에 온 1990년대 송도는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올여름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무려 16년 만이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목격한 기록자이다. 송도 모래사장이 도로가 되었다가 다시 해수욕장이 되는 과정을 촬영했다. 해수욕장이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모든 시간을 기록했으니 나는 운이 좋다.
-자신의 작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가는 작업을 함으로써 의미와 소통이 이뤄진다. 작업을 제대로 하려면 위대하게 해야 한다. 슬쩍 폼만 잡아선 안 된다는 말이다. 나는 아직 작업량이 많지 않다. 30년간 송도 촬영만 몇십만 컷을 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물리적으로 하루에 필름 10롤은 찍어야 한다. 돈으로 치면 하루 30만 원, 1년에 억 단위의 필름을 소비해야 한다. 구구한 변명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송도의 기록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송도 사진을 전시하는 뮤지엄을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송도에서 촬영한 100년의 사진이 필요하다. 포항의 2세대 사진가인 이도윤 선생이 60년대부터 송도를 담았다. 선생은 한국사진작가협회의 산증인으로 사진의 미학적 측면을 추구한다. 태풍에 부서지거나 손상된 송도 풍경이 거의 없는 이유다. 황송하게도 필름을 통째로 넘겨주셔서 디지털 작업을 해놓았다. 이도윤 선생의 60년에서 80년대 송도 사진과 90년도 이후 나와 후배들의 사진이 있으니 송도 100년 사진 전시관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전국의 사진하는 친구들이 포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사진 잘하는 도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포항은 빛의 도시이고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지금까지 포항 경제의 주축이 포스코였다면 앞으로는 사진을 비롯한 문화가 차세대 먹거리가 될 것이다.
-렌즈에 담고 싶은 단 한 컷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아직도 송도 주변을 서성거린다. 내일 나타나길 바란다.
안성용 사진가는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하고 대구대학교에서 사진학 석사와 조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포항공대 홍보과 교직원으로 포항에 정착하면서 송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는 전업으로 사진에 전념하고 있다. ‘더, 포항’ 외 5권의 사진집을 펴냈고, 24편의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 포항사진작가협회 회원이며, 문화예술협동조합 ‘잇다’ 대표이사이다. 국내외 사진작가들의 축제인 ‘사진의 섬 송도’를 기획해 올해로 제7회 행사를 앞두고 있다.
/배은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