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서 유유자적 힐링투어
포항에게 바다는 먹거리 창고이자 놀이터였으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관문이었다. 최근에는 K-드라마 대표 촬영지로 이름을 알리면서 ‘관광지’로써 지역을 알리고 있다. 특히 청하면 월포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풀잔디를 거닐 수 있는 마을이다. 고속도로는 물론 동해선 기차가 오가는 월포역이 있어 뚜벅이 여행가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월포에서 즐기는 유유자적 힐링 투어 5곳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촬영지
주인공 떠올리며 인증샷 찰칵
울창한 나무 둘러싸인 식물원
벚꽃엔딩 달랠 백합나무 반겨
달맞이 명소 월포 해수욕장서
마음 속 간직한 소원 빌어볼까
□ 청하시장
청하5일장이 열리는 이곳은 포항 사람이 아니라면 ‘공진시장’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터다. 지난 2021년 성황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촬영지로, 극 중 주인공이 사는 마을이었던 공진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바다내음과 함께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조용한 마을이 전세계에서 방문하는 명소로 부상했다. 입구에도 공진시장이라는 간판이 달려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이 아니므로 청하시장을 검색해 찾아가야 한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보라슈퍼’다. 드라마 속에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곳이다. 현재는 추억의 간식과 장난감 등을 판매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공진반점’이 있다. 남자 주인공이 배달부로 일하는 중국집으로 나왔지만, 현실에서는 곰탕 맛집으로 소문났다. 또 청하5일장 주변으로 ‘청호철물’, ‘오징어 탑’ 등이 드라마 속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마치 갯마을로 들어와 있는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가장 인기있는 장소는 역시 ‘한낮에 커피 달밤에 맥주’ 카페다. 파스텔톤의 커다란 문과 덩쿨이 내려앉은 카페 전경은 파란 하늘에도, 노을진 붉은 하늘에도 잘 어울린다. 방문객들은 당장이라도 주인공들이 나와 반겨줄 것 같은 풍경에 매료돼 기념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 기청산식물원과 청하중학교
기청산식물원은 청하중학교 맞은 편에 위치해 있다. 지난 1969년 기청산농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04년 환경부의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선정됐다. 현재까지 서식지 내에서 보존이 어려운 멸종위기야생식물 종을 관리하고 복원사업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등 멸종위기야생식물 지킴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여 자칫 지나칠 수 있지만, 단돈 8천원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2천500여 종의 멸종위기야생식물이 모여 살고 있어 아이들의 자연 학습 놀이터로 제격이다.
전시시설도 식물의 환경에 맞게 다양하다. 오는 5월에는 ‘벚꽃 엔딩’의 아쉬움을 달래줄 백합나무(튤립나무)와 쪽동백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백합나무는 목련과로 높이 50∼60m의 크기로 자란다. 손바닥을 펼친 듯한 커다란 초록잎 위로 황녹색의 꽃이 튤립처럼 핀다. 쪽동백나무는 옥령화라고도 불린다. 때죽나뭇과의 낙엽 활엽교목으로 흰 꽃이 포도알처럼 늘어져 탐스럽게 피어난다. 나무는 가구재로, 씨는 머릿기름이나 초의 원료로 쓴다. 6월에는 노오란 모감주나무가 자태를 뽐낸다. 종자가 염주로 만들어져 염주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황색의 꽃이 펴 개나리와 닮았다. 꽃이 지고 나면 꽈리처럼 생긴 열매가 달린다.
기청산식물원과 얼굴을 마주한 청하중학교는 지난 2005년 환경보전 우수 시범학교로 선정된 만큼 경관이 뛰어난 학교로 유명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학교와 학생들이 직접 텃밭을 가꾸는 풍경은 옛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사이로 봄에는 벚꽃이 나리고 가을에는 노란 단풍이 물들어 운치를 더한다.
□ 용두 허우리 향나무
용두리에 뿌리내린 허우리 향나무는 높이 7m, 바닥둘레만 4.66m에 달하는 거목이다. 2.90m나 되는 4개의 큰 줄기가 갈라져 압도적이다. 이 향나무에는 일화가 전해 내려져 온다. 향나무가 지키고 있는 용두 1리와 2리는 원래 한마을이었으나, 오래전 큰 홍수로 도랑이 넘쳐 마을이 두 지역으로 갈라져 멀어지게 됐다. 이 때문에 마을 노인분들이 서로 왕래할 수 없는 처지가 됐고 서로 사랑하던 북촌할배와 광명할매 또한 헤어지게 됐다. 이에 마을 구장이 향나무를 심어 두 어르신이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낭만적인 유래와 다르게 재밌는 이야기를 꺼냈다. 할매마을과 할배마을의 사이에 우환과 다툼이 있었지만, 향나무를 심고 난 후 마을이 평온하고 화목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앞세우던 향나무가 수백년 간 마을 수호자로 자리를 지켜오고 있음은 사실이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따가운 봄볕을 피하고 있노라면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와 풀잎 쓰다듬는 소리를 낸다. 여행 중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쉬어가기 좋은 장소다. 운이 좋다면 고령의 마을 어르신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다.
□ 월포해수욕장
포항이 경북을 대표하는 바다도시인 만큼 동네마다 각양각색의 해수욕장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월포해수욕장의 매력은 뭘까. 달 월(月)에 물가 포(浦)라는 그 이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곳은 달이 가장 먼저 뜨는 ‘달맞이 명소’다. 일찍이 이 사실을 안 이들은 구룡포 해맞이공원에 가기 하루 전날 밤 이곳에서 떠오르는 달에 소원을 실어 보낸다. 방송인 전현무가 방송국에서 대상을 수상한 날 밤 월포의 한 펜션에 내려와 일출을 보며 2023년 새해 첫날을 기념하기도 했다.
달은 달현산 아래 바다 인근에서 가장 보기 좋다. 까만 바다에 고개를 내미는 파도가 하얀 달빛에 부서지는 일은 소중한 이와 오래 즐기고픈 장면이다. 첫해를 맞이하며 열정을 다짐하기 전에 조용히 어둠을 밝히는 달님에게 지난해가 무사히 지나갔음을 감사히 기도하고 한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또, 해양스포츠를 빼놓을 수 없겠다. 월포는 파도가 잔잔하고 수심이 평균 200m로 낮아 초보자가 서핑을 도전하기 좋다. 주민들과 월포초등학교 학생들이 플로깅, 블루카본 등 해양생태계보호 활동을 하고 있어 환경적으로도 깨끗하고 안전하다. 백사장에는 옛날부터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데 썼던 후릿그물과 배 한 척이 서 있다. 서핑 후 보드와 함께 인증샷을 찍으면서 절대 놓치면 안 될 포토존이다.
□ 사방기념공원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에 위치한 이곳은 한국 사방사업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07년 문을 열어 사방의 목적과 중요성 등을 설명하는 뜻깊은 장소다. 이 공원은 1975년부터 5년간 360만명이 투입돼 4천500㏊를 단기간에 녹지화한 전국 최대 규모의 영일지구사방사업 성공기를 보여주며, 외부공원과 사방사업 기술변천과 각종 자료를 모아 전시한 실내전시실로 나눠져 있다. 주차장에서 언덕길을 오르면 드넓은 잔디광장에 다양한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고, 뒤로는 탁 트인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념관 안에서는 영상물과 게임 등 체험형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설명 안내도 무료로 제공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2층으로는 외부공원과 이어진다. 자주색의 비단향꽃무, 들국화 같은 마가렛과 색색의 데이지가 올망졸망 모여 있는 꽃길을 따라 걸어가면 하늘을 담은 연못이 펼쳐진다. 사방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동상들이 있는 산지사방 전시장을 지나고, 억새밭이 손짓하는 바람의 언덕에 다다른다. 뒤돌아보면 성큼 다가온 바다와 일직선으로 이어진 계단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묵은봉 정상 직전에는 관해루가 있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정자로 남쪽 호미곶이 희미하게 보인다. 정상 동북쪽으로는 청진리 항구와 해안선이 평화롭다. 사방사업에 대한 이해부터 산을 직접 느끼며 오르기까지 마침내 발아래 바다와 산이 한데 어우러진 풍광을 담으면 평온과 기쁨이 마음을 채운다.
/김민지기자 mangch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