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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아동이 사회안전망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

등록일 2023-04-24 18:21 게재일 2023-04-2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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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br/>이정미 선린나래 아동쉼터 원장
이정미 선린나래 아동쉼터 원장이 인터뷰 중 어린 시절의 학대는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고 트라우마로 남는다며 아동학대의 위험성을 전하고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인이 사건’ 당시 포항의 한 교회에서는 1인 시위가 오래 이어졌다. 정인이의 외가였지만 도움은커녕 방조를 넘어 학대에 동참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포항시민은 더 분노했고 미안해했다. 어느덧 추모의 열기가 식고 사건은 잊히고 있지만 정인이가 남기고 간 것들은 있다. 수많은 정인이들을 살리기 위한 법 개정과 대응 시스템의 강화, ‘학대피해 아동쉼터(이하 쉼터)’의 확충이 그것이다. 포항에 3곳인 쉼터 가운데 한 곳인 선린나래 아동쉼터에서 이정미 원장을 만났다. 간판도 안내표지도 없는 쉼터는 보통의 가정집과 다름없는 온기가 흘렀다.

 

2018년 학대피해 아동쉼터로 설립… 18세 미만 여자아이들 최장 9개월까지 이용

학대피해 신고되면 시청 아동보호팀·경찰과 함께 출동해 가해자와 아동 분리

피해 아동들 대부분은 가해자인 부모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감정 지녀

재학대율 만만치 않은 만큼 퇴소 후 사후 관리 중요… 복귀 대신 애육원 등 입소도

 

-쉼터 주소가 비공개인 이유는.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피해 아동은 가해자와 즉시 분리된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안타까운 건 피해 아동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피해 아동이 안전하게 귀가하기 위해서는 학대 재발 방지를 위한 준비가 갖춰져야 하고 대부분의 가해자인 부모가 본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금지된다.

 

-내부는 여느 가정집과 다름없는 이곳을 소개한다면.

△공동생활 가정 형태로 운영하는 학대피해 아동쉼터로 2018년에 설립됐다. 학대피해를 입은 0세~18세 미만 여자아이들이 이용한다. 이용 기간은 최장 9개월까지 가능하며 정원은 7명이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늘 정원이 차 있었다. 지난겨울에만 정원을 넘어 생활하다 지금은 한 명이 남아있다. 한꺼번에 몰릴 때도 있고 여유가 있을 때도 있는데, 인원 감소를 곧바로 학대 감소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쉼터를 몰라서 고통받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주로 어떤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오나.

△부모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많다. 그 외에도 성 학대와 방임, 유기 등 이유는 다양하다.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학대가 너무나 쉽게 이뤄진다. 피해 아동이 사회의 안전망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전선의 방어선이 바로 이곳이다.

 

-학대피해를 입은 아동이 쉼터로 오기까지 과정은.

△학대피해가 신고되면 시청 교육청소년과 아동보호팀 전담조사관이 경찰과 함께 출동하여 가해자와 아동을 분리한다. 성폭력 피해 아동의 경우 해바라기센터에서 진술과 조사를 맡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분리된 아동을 쉼터로 보내고 퇴소 이후까지 관리를 담당한다. 이 모든 과정을 시 아동보호팀이 총괄한다.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여러 기관이 다각도로 긴밀하게 협조하는 시스템이다.

 

-쉼터에서 아이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아이들은 한밤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갑작스러운 낯선 곳이 얼마나 두렵겠나. 처음에는 사람을 까칠하게 대하고 무엇보다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성 학대를 당했다면 남성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크다. 시에서 입소 통보가 오면 아이들 주소를 쉼터로 옮기고 곧바로 전학을 해서 학업에 공백이 없도록 한다.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해 정서적 안정과 회복을 돕고, 학원이나 캠프 등 아동 개개별이 원하는 활동을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쉼터에서는 아이들이 역경에 좌절하고 깨지는 유리잔이 아니라 고무공처럼 역경을 발판 삼아 꿋꿋하게 다시 튀어 오르는 회복 탄력성을 키우도록 돕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예체능 활동은 물론 과외나 다양한 체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사안이 경미하거나 빨리 가정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가정으로 복귀한 뒤에도 교사에게 연락을 하거나 상담을 받으러 오기도 한다.

 

-쉼터에서 가정으로의 복귀 절차는.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정부방침은 가정 복귀를 우선 과제로 삼고 시설로 입소시킨다. 한번 복지시설에 입소하면 양육자의 원가정복귀 의사가 있더라도 절차를 밟아야 한다. 부모와 아동이 준비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원가정 복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동이 별 무리 없이 적응하고 부모도 약속도 잘 지키는지, 학대가 재발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졌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또한 아동과 양육자의 상담을 함께 진행하고 안정된 상황이 되면 통합사례회의를 거쳐 퇴소하게 된다. 최종 결정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시 아동보호팀, 쉼터, 경찰 등 최소 3개 이상 기관이 참여하는 ‘아동학대 사례판정위원회’가 결정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부모가 준비됐는지 판단하고, 쉼터는 아동이 귀가해도 좋은지 의견을 제시한다.

 

-쉼터 아동에게 원가정 복귀에 의사를 물어보면 어떻게 답하나.

△피해 아동들은 대부분의 가해자인 부모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양가적 감정을 지닌다. 학대받은 아이들이 모든 피해를 감당하는 현실이다. 심각한 학대 피해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면 다수의 아이들은 원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복귀프로그램을 통해 원가정에 다녀온 아이들은 되돌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표정이 밝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재학대율도 만만치 않은 만큼 퇴소 이후의 사후 관리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 원가정에 복귀하는 대신 장기 쉼터나 애육원으로 가는 아동도 있다.

 

-복지 분야에 종사한 지 얼마나 되셨는지. 처음에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복지 분야에서 일한 지는 15년 정도 됐다. 교회 노인대학 봉사를 계기로 체계적인 돌봄에 관심이 생겼고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다. 한 사람의 문제를 사회 구조의 측면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복지 이념에 마음이 끌렸다. 사회복지의 이념인 ‘여럿이 함께’라는 말을 좋아한다. 장애인과 노인, 심리 상담 등 복지의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고, 보건복지부와 포항시가 설립한 장애인 근로작업장인 포항바이오파크의 창립 멤버로도 참여했다. 제품 제조와 포장, 홍보, 판매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하다 보니 당시 동료들끼리 거길 겪고 나면 더 이상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후에는 ‘포항 생명의 전화’에도 몸을 담았다.

이정미 선린나래 아동쉼터 원장의 포항생명의전화 강의 모습.
이정미 선린나래 아동쉼터 원장의 포항생명의전화 강의 모습.

-전화 한 통에서 생명을 구하는 힘을 느낀 적이 있나.

△생명의 전화는 국내 최장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민간 기관이다. 포항에만 100여 명 상담사가 24시간 상담한다. 매일같이 통화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얘기를 들어줘서 도움이 됐다는 사람도 있다. 생명의 전화에서 근무한 지 2년 차였을 때, 상습적으로 전화를 해오던 상담자가 밧줄을 옆에 두고 술을 마신다며 극단적 선택 의사를 내비쳤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통화가 끊기지 않도록 대화를 이어가며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경찰이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정말 상담자가 밧줄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날 첫 출근했던 신입 상담사가 긴박했던 상황을 목격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하루 만에 사표를 던졌다.

 

-늘 힘든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지치지 않나.

△학대받은 아동들의 사정을 듣다 보면 눈물이 안 날 수 없다. 그래도 선생님들과는 감정이입을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설혹 무뎌지더라도 냉정하게 처신해야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가여운 마음은 크지만 지나치게 이입하면 교사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잘 도울 수 있을지를 집중하며 문제를 객관화하고, 자신의 소진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의 경우는 사람들을 만나 에너지를 얻는다. 다양한 모임을 성심성의껏 찾아서 사람들과 교류한다.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어 공연을 보거나 여행을 하고 독서클럽을 찾는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충전한다는 말은 축구 선수가 축구를 하며 휴식한다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인생을 모두 가져온다고 하지 않나. 내가 경험하지 못한 걸 상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사람에게서 얻은 에너지는 아이들을 대할 때도 좋은 에너지로 작용한다. 내가 속한 모임 대부분은 10년 이상 가족처럼 만난 사람들이다. 세월을 같이 보내면서 늘 함께 한다는 것에 힘을 얻는다.

 

-쉼터의 아이들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쉼터의 아이들 또한 공동생활을 하며 서로를 보듬는 법을 알아 간다. 물론 극도의 스트레스로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공감하고 유대하는 긍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본다. 상처받은 이가 나 혼자만이 아님을 깨닫고, 상처 있는 채로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어린 시절의 학대는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고 트라우마로 남는다. 한창 사랑받을 나이에 상처받고 굴곡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잘해주는 것,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사랑해 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정미 아동쉼터 원장은

 

봉사 활동을 하다 ‘여럿이 함께’라는 사회복지의 이념에 매료되어 가정폭력상담사와 생명의전화 전화상담원, 사회복지사, 성폭력상담원 등의 자격을 취득했다.

위덕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사회복지실천을 전공하고, 노인과 장애인, 학대피해 아동들을 도우며 사회복지의 일선을 담당했다.

경북농아인협회에서 수화통역사, 직업재활시설인 포항바이오파크에서 홍보 업무, 포항생명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사로 일했다.

현재 포항선린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선린나래 아동쉼터’에서 학대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쉼을 얻고 꿈을 가꿔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

 

/배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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