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은 몰래 엿듣는다는 뜻이다. 통신비밀보호법에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청취하거나 녹음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수사기관이 법적 근거를 가지고 합법적으로 대화를 엿듣는 것은 감청(監聽)이다.
도청과 관련해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역사적 사건은 1972년 발생한 미국의 워터게이트 정치스캔들이다. 당시 공화당 출신의 닉슨 대통령이 비밀공작단을 시켜 워터게이트 빌딩 안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현직 대통령이 사임하는 사태로 커진다. 닉슨은 임기를 다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됐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각종 비리와 연루된 사건에는 으레 게이트라는 접미어가 붙게 된다.
이 사건은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의 끈질긴 활약으로 세상에 전모가 공개되는데, 당시 두 기자는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려 취재해 끝내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 낸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도청은 이제 일반인뿐 아니라 국가기관간에도 치열한 전쟁거리가 됐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만년필, 구두밑창, 손목시계, TV스피커 등에 설치된 기상천외한 장비들이 실제로 시중에 유통돼 개인 사생활 보호가 어려운 세상이 됐다. 심지어 레이저 발사를 통해 맞은편 빌딩에서 진행하는 회의 내용도 도청할 수 있다 하니 도청기술 첨단화가 놀라울 뿐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우리나라 대통령실 도청 의혹과 관련한 논란이 시끄럽다. 국가간 정보전쟁의 한 단면으로 짐작되나 우리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오히려 더 궁색해 보인다. 국익에 배치된다면 선을 긋고 해명하는 게 옳다. 첨단화하는 도청기술에 국가나 국민 모두가 노출된 세상이 된 것 같아 두렵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