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주 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 법안에 대해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민의힘이 “절차를 어긴 이 법을 무효로 해달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지 11개월 만이다. 헌재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적 사고를 수용한 것이다. ‘절차상 하자가 있으면 유죄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와도 모순된다.
민주당은 작년 4~5월 검수완박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위장 탈당 등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했다. 법사위 통과를 위해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킨 뒤 안건조정위에 넣어, 이 위원회를 무력화했다. 안건조정위는 국회 과반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다수당이 수적 우세를 악용해 법안을 함부로 통과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제도다.
상임위에서 이 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소속 의원 수가 가장 많은 민주당 조정위원 수와 비민주당 조정위원 수를 같게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탈당한 민 의원을 조정위원에 포함시킨 것이다. 민주당은 이와함께 여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해 ‘회기 쪼개기’ 수법도 동원했다. 헌재는 이런 행위를 위법으로 판단하면서도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전면 차단해 국회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효라고 했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앞으로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어떤 불법과 편법, 꼼수를 저질러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어졌다. 이와관련 법원장 출신인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이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더이상 지켜지지 않아도 되고, 절차에 어떠한 위헌·위법이 있더라도 형식적인 다수결 원칙만 지켜지면 된다. 입법절차의 위헌·위법 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했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야당이 본회의 직회부(법사위 패싱)를 추진하고 있는 법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민주당은 지난주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과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직회부한 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통과시켰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호 법안으로 불린다.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 방송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상태다.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모든 의사가 투사가 돼 총궐기에 나서겠다”고 밝혀, 또 한번의 국가적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노란봉투법’도 본회의에 직회부할 계획이다. 상임위 의석수를 보면, 민주당이 직회부할 수 있는 상임위가 전체 17곳 중 6곳에 달한다.
헌재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입법 폭주에 날개를 달아주면서, 민주당은 이제 국회에서 여야합의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입법 과정마다 민주당이 단독 처리 강행 카드를 남발할 경우,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