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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창조물이 아닌 사회적 토양에서 피는 꽃”

등록일 2023-02-27 18:40 게재일 2023-02-2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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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br/>박선영 작가
‘1946 경주예술학교’ 전시 작품을 설명하는 박선영 작가.

예술은 사회적 토양에서 피는 꽃이라고 한다. 예술가 홀로 뚝딱 만들어내는 창조물이 아니라는 의미다. 예술이 발달한 도시에는 튼실한 밑동이 존재하며, 뿌리 깊이 간직한 수분과 양분은 대를 잇는 자양분이 된다. 찬란한 고대 문화의 성지인 경주는 한국 근현대 미술의 선두였다. 해방 직후 설립된 경주예술학교가 그 축이었다. 가난하고 피폐했던 시절, 남한 최초의 미술교육기관의 설립은 한국 근현대예술사를 통틀어서도 파격적인 사건이다. 경주의 문화적 토양이 풍부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조명 받지 못했던 경주예술학교 출신들의 전시가 2015년부터 이뤄지고 있다. 경주 예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지역 예술인들의 노력 덕이다. 경주 근현대 미술사를 발굴하고 추적하며 스스로의 작품 활동 또한 성장했다고 말하는 박선영 작가를 경주미술사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선두 경주, 그 중심에 선 경주예술학교의 성쇠

경주 근현대 미술사 발굴·추적하며 개인 작품 활동도 더불어 성장

일본서 7번째 개인전 등 솔거미술관 개관전부터 매년 전시회 참여

예술로 이루려는 뜻 다양한 매체서 소통, 울림 주는 작품 하고 싶어

-최근 7번째 개인전을 일본에서 개최했다고.

△작년 12월에 일본 오이타현 나카츠시 기무라 미술관에서 ‘푸른 사유·빛, 일상과 조우하다’전을 했다. 동아시아 문화예술교류의 일환으로 기무라 미술관이 진행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빛을 이용하는 작가를 공모한다고 해서 포트폴리오를 제출했고 초청을 받았다. 일본의 방역조치가 강화됐던 때라 사전 조율은 온라인으로 했고, 전시 기간에 2주간 머물며 워크숍과 오픈 스튜디오를 진행했다.

 

-그동안의 개인전 타이틀을 보면 ‘기억의 풍경’, ‘반가사유’, ‘무엇이든 무엇도 아닌’, ‘푸른사유’ 등 주로 기억과 시간, 사유를 주제로 하고 있다. 작품을 구상할 때 주제부터 확정하고 형태를 확장시키는 편인가.

△애초에 의도했든 아니든, 지나고 보니 관통하는 주제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시간은 곧 소멸이다. 언젠가는 사라지는 존재지만 그렇다고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아서 우리에게 여전히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어릴 적부터 세상과 현실의 이면이 궁금했고 ‘세계의 불가사의한 이야기’ 같은 류의 책을 읽곤 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건, 감정, 그리고 감각으로 느끼는 많은 것들은 몸의 ‘기억’으로 저장된다. 시간이 지난 후 작업을 하면서 그 ‘기억’은 칠해지고, 닦이고, 다시 덮어짐을 반복한다.

 

-작품 전반의 푸른색이 인상적이다. 푸른색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면의 사유적 풍경은 결국 푸른색으로 남을 때가 많았다. 내게 푸른색은 하나의 색이 아닌 무수한 스펙트럼을 지닌 색이다. 연한 파랑, 어두운 파랑, 따뜻한 파랑, 차가운 파랑, 초록색이 느껴지는 파랑, 붉은색이 도는 파란색까지. 그리는 순간의 우연성을 담은 추상 작업이 많은데, 그 과정의 결과가 대체로 푸른색 계열이었다.

 

-코로나19를 전후로 작품의 분위기가 다르다. 드로잉 위주의 평면에서 조명과 소리를 더한 입체로의 변화는 어떤 고민의 산물인가.

△팬데믹을 전후로 나와 연결된 타인과 세계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면서 사진과 조명을 작업에 사용하게 되었다. 팬데믹은 공포로 다가왔고 타인과 멀어져야 했던 동시에 가깝게 연결된 세계임을 알게 해주었다. 마스크 탓에 누가 누군지 분간되지 않는 현실이 낯설면서도 마스크를 끼지 않는 행위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멈춰진 일상은 한편으로 사유할 시간을 제공했다. 반가사유상을 배경으로 나의 초상사진을 겹쳐 표현한 작품은 그렇게 나왔다. 경주미술협회 활동과 경주미술사 연구를 통한 지역 미술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작품의 변화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예전에는 내 안에서만 뭔가 끌어내려고 했다면, 지금은 예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가, 라는 고민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박선영 작가의 ‘푸른사유·빛, 일상과 조우하다’ 일본 전시 포스터.
박선영 작가의 ‘푸른사유·빛, 일상과 조우하다’ 일본 전시 포스터.

-오랫동안 ‘기억과 시간’을 주제로 작업을 한 영향인지 경주 미술사 연구에도 열심이다. 지역 근현대미술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경주의 첫 공립미술관 추진 당시 특정인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 명칭을 둘러싼 논쟁이 컸다. 경주는 근현대 미술의 역사가 깊고 작가군이 상당하지만 관련 연구가 미약했다. 해방 직후 설립된 경주예술학교가 대단했다거나 황술조, 손일봉 등등의 거장이 있었다는 것만 알려진 정도였다. 그런 문제 의식에서 경주미협 내에 경주근현대미술연구회를 발족하고, 드러나지 않은 1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 아카이브 자료를 발굴했다. 솔거미술관 개관전인 ‘경주미술의 뿌리와 맥 7인’을 시작으로 매년 관련 전시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70년이 지났으니 자료 수집이 쉽지 않았을 텐데.

△ 경주 근현대미술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나란히 할 만큼 역사가 깊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지방의 미술역사가 소외되어 왔고 관련 연구자도 드물다. 경주예술학교의 경우 경주시사나 예총사의 한두 페이지가 전부였다. 당시 신문 기사를 찾아 일일이 대조하고 연락이 닿는 유족들과 만났다. 집중적인 자료발굴과 유족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은 전시회를 통해 마련됐다. ‘1946 경주예술학교’ 전시 소식을 들은 사공침(경주예술학교 1회 졸업생)의 손녀가 자료를 들고 찾아왔다. 조희수 선생에게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또렷하게 기억을 하시더라. 경주예술학교 출신으로 유일한 생존자인 조희수 선생은 경주 근현대 미술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든든한 조력자이다. 작품과 자료의 발굴에 있어서는 서양화가인 최용대 수석 연구원의 역할이 컸다. 최용대 선생은 경주 1세대 사진작가 최원오 선생의 아드님이다. 그리고 미술사학자인 이애선 전북도립미술관장을 만나면서 연구는 활기를 띠게 됐다. 해방 직후 설립된 경주예술학교에 관한 논문 저자로 지금까지 각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경주가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심이 된 배경은.

△경주가 근대 미술문화를 선도한 배경은 탁월한 인재들에 있다. 황술조를 필두로 손일봉, 김준식, 김만술, 손수택 등이 해방을 전후로 활동했다. 경주예술학교는 경주 근대미술의 중요한 축이다. 서울대학교 미술과 보다 6개월 빨리 설립된 남한 최초의 예술전문학교이다. 서울의 중진 미술가를 교수로 초빙했을 정도로 수준도 높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좌우익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1952년 2회 졸업생 배출을 마지막으로 폐교의 수순을 밟게 된다. 재학생들은 폐교 이후 홍익대학교로 편입했다. 예술학교의 꿈을 버리지 못한 김준식은 미술과를 계림학숙으로 흡수합병한다. 이후로도 예술을 향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고, 빛바랜 사진 뒷면에서 ‘1956년 경주미술관 건립위원회’라는 글귀가 발견되기도 했다.

 

-경주에 인물이 많았던 이유는.

△문화 예술의 저력은 오랜 역사에서 나온다. 경주에 예술가가 많았다는 건 신라 문화의 풍토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일제강점기에 유학을 떠났던 작가들 대부분은 해방 후 귀국해서 서울이나 대구에 정착했다. 고향에 돌아와 활동한 경우는 경주가 유일했다. 신라 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내재된 풍부한 문화적 토양이 예술적 가치를 일찍 일깨우지 않았을까. 유학생들의 잇단 귀국은 경주의 문화 예술적 역량을 고조시켰다. 일본에서 미술교사를 한 황술조를 비롯해 손일봉과 김준식, 김만술은 일본 유학파로 수상 경력도 화려하지만 경주에 머무르며 작업을 이어갔다.

 

-창작 활동과 미술사 연구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할 텐데 문화 기획에도 관심이 크다고.

△작년에 경북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70대 이상을 위한 ‘황남 골목에서 청춘을 만나다’를 기획해서 운영했다. 미술감상과 다양한 표현활동을 통해 삶을 회고하고 긍정하는 다소 거창한 목표의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워하던 어르신들이 점차 몰입하고 성취감을 느꼈으며, 마칠 때는 아쉬워했다. 예술을 일방적으로 건네는 것이 아닌 예술로 소통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앞으로 지속 가능한 활동을 만들기 위해 뜻있는 동료 작가들과 매주 만나 공부도 한다.

 

-앞으로는 또 어떤 행보를 작업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경주 미술사 정립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지금은 경주화단의 2세대 작가인 배한기, 이재건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향후 60년대 이후 경주 현대 미술사도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경주 미술의 맥을 찾는 작업을 하다 보면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다. 작품 활동 또한 변수가 끼어들어 길을 잃을 때가 있지만, 우연과 필연이 섞였을 때 만들어지는 에너지라는 것이 있다. 그럴 때 희열이 크다. 생각지 못한 울림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독창적인 작품을 구축한 작가들, 오래도록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 모든 작가들을 존경한다. 나 또한 원하고 맞다면 서슴지 않으려 한다.

‘조희수 초대전’에서 경주미협 작가들과 함께.
‘조희수 초대전’에서 경주미협 작가들과 함께.

박선영 작가는

 

경주 출생으로 학창 시절 내내 미술부 활동을 했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 협동과정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주요 전시로는 ‘기억의 풍경’(경주라우갤러리, 2010), ‘반가사유 2020’(서울 GB갤러리, 2020), ‘무엇이든 무엇도 아닌’(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2021), ‘푸른사유·빛’(경주솔거미술관, 2022), ‘푸른사유?빛, 일상과 조우하다’(일본 나카츠시 기무라기념미술관, 2022) 등이 있다. 7회의 개인전과 400여 회의 단체전 및 초대기획전, 해외교류전 등에 참여했다.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 17~18대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솔거미술관 특별기획전을 담당했다. ‘경주미술의 뿌리와 맥 7인’을 시작으로, 경주예술학교의 처음과 끝을 함께 했던 김준식, 경주예술학교의 마지막 학생으로 홍익대 교수를 지낸 김종휘, 경주예술학교 출신의 유일한 생존자 조희수 선생을 비롯해 경주 근현대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을 조명하는 10여 회의 전시를 기획·총괄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 부설 경주미술사연구소장이자, 미술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아트앤지(ART&G)미술경영연구소 대표이다.

 

/배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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