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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녹이고 봄 부르는 걸쭉한 칼국수 한 그릇

민향심 시민기자
등록일 2023-02-19 18:04 게재일 2023-02-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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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불어넣듯 면 미는 모습에<br/>할머니와의 옛 추억 떠올라<br/>“음식 하나에도 건강 생각해야”<br/>주인장 철학, 마음까지 따뜻
칼국수를 만들고 있는 황만호 대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임에도 아직 바람이 차갑다. “이런 날은 들깨칼국수 한 그릇이 제격인데…” 누군가 꺼낸 한마디에 친절함으로 소문난 네이버에게 맛집을 물었더니 ‘경산시 강변서로 홍두깨 들깨손칼국수’를 알려준다.

남천강변에 위치해 있어 산책을 하면서 자주 봤던 칼국수집이라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홍두깨 칼국수집’이란 이름을 증명하려는 듯 커다란 홍두깨를 이용해 열심히 면을 밀고 있는 주인이 보였다.

마치 장인이 혼을 불어넣듯 면을 밀고 있는 모습이 엄숙하기까지 했다. 가만 앉아 보고 있으려니 어릴적 추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자주 홍두깨로 직접 면을 밀어 칼국수를 만들어주셨다.

잘 주무른 반죽을 둥글넓적하게 만든 다음 보자기를 펴고 홍두깨를 이용해 면을 밀고 있는 할머니의 팔에 매달려 “할머니 또 칼국수야?”라고 묻곤 했다.

“그려. 칼국수가 얼마나 좋은 음식인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돈 많은 양반들만 먹었어. 안 그러면 결혼식 같은 잔치 때나 먹던가. 그래서 혼기 찬 사람에게 국수 언제 먹여 줄 거냐고 물어보잖아. 국수가 그만치 귀한 거야”라는 할머니의 대답이 돌아왔다.

할머니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염불엔 관심 없고 잿밥에 관심 있는 손녀는 칼국수 면을 자르고 난 후 남는 끄트머리 낚아챌 일만 관심사였다. 삭정이 불에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었던가. 갑자기 홍두깨 칼국수집 주인에게 “끄트머리는 다 자르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4인분을 주문하고 기다리자 재빠르게 밀고 썰어 만든 면과 들깨가루를 넣어 만든 걸쭉한 칼국수가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겨 나왔다.

기대 이상으로 양이 많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갓 담은 겉절이를 척척 얹어 얼마나 먹었던지. 보통 때 같으면 국물을 남겨야 하는데 고소한 들깨 맛에 결국 남김없이 다 먹었고, 움직이기조차 힘들만큼 배가 불렸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 “홍두깨로 밀고 칼로 썰어 들깨가루를 넣어 끓인 국수라 상호를 홍두깨 들깨칼국수라 지었다”는 황만호(55) 대표에게 국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반 칼국수가 아닌 들깨칼국수를 고집하는 이유는 드시는 분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들깨는 신진대사와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면역력을 증진시키고 혈관 건강에도 탁월합니다. 감마 토코페롤 성분이 함유돼 피부 노화도 막아주죠”라며 웃는 황 대표.

겉모습처럼 속마음도 깊고 따뜻해 보였다. 20년 가까이 요식업에 종사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손님들이 살림 걱정을 하면 제가 겪었던 힘든 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창업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비법 전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잘 되도록 함께 연구해 사이드 메뉴 개발에도 최선을 다 할겁니다.”

혼자가 아닌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위해 음식 한 그릇을 팔더라도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황 대표의 마음가짐이다.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해 작게나마 나눔의 기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머지않아 실행에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황 대표가 끓여낸 칼국수에는 그의 철학이 녹아들었고, 그래서 맛이 남달랐던 것 같다. 경기가 어려운 요즈음. ‘황만호표 홍두깨 들깨칼국수’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한 사랑이 겨울이 녹아 봄이 오듯 세상 속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민향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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