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대 게스트하우스 "박기철·조지우 대표"<br/> 세계곳곳 누비던 동갑내기 50대 부부<br/> 슈퍼마켓·모텔 건물 고쳐 8년째 운영<br/><br/> 건물 1층엔 공유거실 카페 ‘인 더’ 운영<br/> 세미나실·노래방·파티공간 등도 마련 <br/>“꼭 다시 올게요” 인사 받을때 가장 행복
기자가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라고 불리는 숙박업소에서 처음 묵어본 건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였다. 2011년이다. 10개월쯤 아시아와 유럽의 20여 개 나라를 떠돌며 다양한 형태의 게스트하우스를 경험했다. 그 이전까진 여행을 떠나면 호텔 혹은, 모텔이나 여관에서 잠을 청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태국 방콕의 조그만 게스트하우스.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스무 살 청년은 맥주 한두 병이 준 취기에 신이 나서 당시 마흔 살이던 기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숙부와 조카뻘의 여행자가 그렇게 너나들이로 어울리는 모습은 한국에서라면 보기 힘들었을 터.
동유럽 몬테네그로에선 스위스와 덴마크,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에서 온 청년들과 서툰 영어로 밤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밤의 설렘과 즐거움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그곳 역시 2만 원 남짓의 돈으로 하루를 묵었던 깔끔한 게스트하우스였다.
포항시 북구 삼호로에 자리한 영일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박기철·조지우(55) 부부 역시 20대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많은 국가를 여행했다고 한다. 북아메리카와 유럽,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떠돌아다닌 동갑내기 부부는 인생에 있어 ‘여행’이란 단어가 가지는 힘과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고 편안한 만남이 시작됐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지난 2015년 9월 포항으로 이주해 슈퍼마켓과 모텔로 운영되던 건물을 리모델링 해 영일대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째 접어들었다.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간 적지 않은 외국인과 한국인 여행자들이 영일대 게스트하우스를 찾았고, 두 사람은 질풍노도의 시절을 지나며 고민을 안고 포항으로 여행 온 젊은이들에게 삶의 경험을 조근조근 들려주는 ‘선배 여행자’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주 화요일 저녁. 동해와 인근 산이 가진 매력에 빠져 ‘즐거운 포항 사람’으로 살고 있는 박기철, 조지우 대표를 만나 게스트하우스 주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어떠했는지 물었다. 아래 그날 오간 이야기들을 옮긴다.
요즘 젊은이들이 여러 고민과 힘겨움 속에서 산다는 걸 알고 있다. 여행은 그런 시간을 이겨내는 힘을 준다.‘돈은 없지만,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될’ 청년들을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초대해 며칠만이라도 행복한 여행자로 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포항에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 둘 다 여행을 좋아한다. 한국 곳곳을 적지 않게 여행했다. 포항에 처음 왔을 때 사실 좀 놀랐다. 다른 도시들도 바다가 아름답거나, 산이 선사하는 풍경이 감동적이긴 했다. 그런데, 포항은 이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바다와 산을 동시에 여행할 수 있는 곳이 포항이다. 그런 매력 때문에 이곳으로 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세상엔 여러 사업이 있다. 그중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택했는데.
△외국으로 여행을 다녀보면 여러 편의시설과 장점을 갖춘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헌데, 한국의 경우엔 아직도 호텔과 모텔이 대부분이다. 포항도 외국인들이 마음 놓고 저렴하게 머물 숙박업소가 드물다. 우리의 여행 경험을 살려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다녀본 나라 중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딘가.
△우리가 여행할 땐 터키라고 불렸던 튀르키예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고대부터 존재한 국가 특유의 신비한 분위기가 좋았고,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음식도 입에 잘 맞았다. 무엇보다 그곳 사람들이 친절했다. 여행을 자주 다녀보면 알게 된다. 낯선 곳에선 현지인의 작은 친절도 감동스럽다.
-게스트하우스를 열기 전엔 어떤 일을 했나? 그리고, 지금 삶의 만족도는 어떤지.
△(박기철) 증권회사에 다녔다. 주식을 사고팔며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했다. 20대 후반부터 10년쯤 그 일을 했다. 예전에 미국에서 발행된 어떤 신문에서 ‘증권사 직원은 공항 관제사와 함께 가장 스트레스가 큰 직업’이라는 대목을 읽었다.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그 시절엔 너무 바빠 좋아하는 여행을 다닐 시간도 없었다. 수입은 비교할 수 없이 적어졌지만, 여행자의 편안함과 치유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으로 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웃음)
그렇다고 사람이 하는 일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당연지사 게스트하우스 운영도 그렇다.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숙소 주인의 손이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소부터 건물 관리와 보수, 여기에 다양한 국적을 지닌 여행자들의 소소한 불편을 모두 해결해줘야 하니 개인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보람이 더 크다는 것이 박 대표와 조 대표의 공통된 부연이다.
“사실 젊은 친구들은 생의 전환점에 서서 고민을 안고 여행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여행자들을 만나면 인생 선배로서, 먼저 청년시절을 경험한 형이나 언니로서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준다. 우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눈 청년들이 ‘덕분에 좋은 시간 보내고 갑니다’ ‘편안히 잘 쉬었어요. 꼭 다시 올게요’라는 인사를 전할 때가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꽤 오랜 시간 게스트하우스를 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는지.
△3~4년 전 태풍이 포항을 덮쳤다. 그때 숙소에 묵었던 손님과 함께 모래주머니를 쌓고, 폭우에 대비하는 등 함께 땀 흘려 일했다. 만약 모텔이었다면 주인이 손님에게 그런 요구나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게 게스트하우스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니겠나? 지금도 그 손님과는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독일인 아내와 갈등을 겪던 30대 손님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일도 기억 속에 남았다.
-포항에 온 여행자들에게 추천하는 관광지와 음식은.
△사계절 다른 매력을 뽐내는 내연산 보경사의 경관이 좋다고 권한다. 다른 지역에선 보기 힘든 물회와 막회도 꼭 먹어보라고 한다. 동빈내항과 영일대해수욕장, 죽도시장을 잇는 운하길도 걸어보라고 하고 싶다. 그곳은 포항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숙소와 비교되는 게스트하우스만의 장점은 뭘까.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여행자들이 어울려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리체험 할 수 있는 게 게스트하우스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싱가포르, 대만 여행자와 독일, 프랑스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데 아시아와 유럽 젊은이들이 친구가 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행자들끼리 교류하고 소통하고 친구가 되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기자가 경험한 유럽의 게스트하우스는 ‘커먼 룸’이라 불리는 일종의 공유 거실에서 젊은 여행자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영일대 게스트하우스 1층엔 그런 역할을 하는 카페 ‘인 더(In the)’가 있다.
향이 좋은 원두커피와 박기철 대표가 직접 구워내는 튀르키예 스타일의 피자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포도주와 맥주도 인근 주점보다 싸게 판매한다.
그 외에도 영일대 게스트하우스 옥상엔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고, 2층엔 단체 손님들이 간단한 요리를 해서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부엌 겸 거실이 있다.
세미나실과 노래방으로 두루 이용 가능한 지하 공간도 여행자들에게 인기다.
장기간의 ‘코로나19 사태’로 여행자가 대폭 줄었던 시절에도 “많건 적건 손님들만이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했다”고 말하는 박기철·조지우 부부.
“좋은 기억을 담아가는 여행자들의 공간으로 10년, 20년 영일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다”는 둘에게 2023년 희망과 계획을 물었다. 돌아온 답변이 따스하고 정겨웠다.
“요즘 젊은이들이 여러 고민과 힘겨움 속에서 산다는 걸 알고 있다. 여행은 그런 시간을 이겨내는 힘을 준다. ‘돈은 없지만,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될’ 청년들을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초대해 며칠만이라도 행복한 여행자로 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