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임인년 한 해도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1년이란 시간이 어쩌면 잎새같고 책장같이 수많은 날들인데 벌써 한 해의 종점으로 치닫고 있다니, 새삼 세월이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아스라한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만감이 교차하고 희비가 엇갈릴 수도 있다.
앞만 보고 달리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아쉽고 미진하거나 괄목할 성과도 있고 실패의 헛발도 디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고 감사한 나날이 아닌가.
시간이란 까마득한 옛날에서부터 아주 먼 미래까지 흘러가는 과객(光陰者 百代之過客)으로, 낮과 밤, 달과 해의 시간이 지나감을 하루, 한 달, 일년 등으로 구분해서 세월이라 칭하기도 한다. 즉, 주간이나 월간, 연도가 어떤 기간이나 구분 상 끊어진 듯 보이지만, 실제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 무한정 계속되고 연결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것이 세상이고 세월이다. 그래서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시간의 구획선에 이르러 뭔가를 정리하고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추구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송구영신의 길목에 서면 누구나가 착잡하면서도 설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다사다난한 지난날들을 무사히 지내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계획이나 목표에 대한 성취율 등의 상이로 저마다 희비의 쌍곡선이 그려지는가 하면, 새로이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야심찬 도전과 새 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한 해를 정리하고 마감한다는 것은 대나무의 마디처럼 계속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한 매듭이라 할 수 있다. 매듭이 튼실해야 쉽게 쓰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한 한 해의 매듭을 잘 짓기 위해 사람들은 하루하루 줄기차게(?) 살며 꿈의 도움닫기를 간단없이 해나가는지도 모른다.
‘무던히 그어왔던/굽어진 계절마다//사르지 못한 가슴/그림자에 파묻히고//한 묶음 회억의 넋두리만/함성으로 울린다//길게 비낀 햇살지면/밝은 햇살 안겨오듯//산등성이 저 너머엔/흔들리는 꿈이 있지//수묵빛 연륜의 타래만/소리없이 감긴다’ -拙시조 ‘섣달의 황혼 속에’ 전문
올해는 유난히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격변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조심스런 가운데 실외 마스크는 벗었지만 대선과 지선을 거치면서 여야의 자리바꿈으로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힌남노 태풍의 강타로 많은 인명피해와 사상 초유의 제철소 침수라는 불가항력 앞에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가 하면, 순식간에 꽃다운 청춘의 넋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등 실로 어마무시한 일들로 점철되어 우울과 슬픔에 빠지게 하고 불안과 걱정의 소용돌이에 휘감겨온 것 같다.
상황과 시간이 주는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새로움은 옛것을 본받아 만들어 내고(法古創新) 지혜는 성찰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니, 한 해의 아름다운 갈무리로 보다 새로운 날들을 준비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