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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어류연구 외길 걷는 물고기 박사

등록일 2022-11-14 19:43 게재일 2022-11-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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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br/>박무억<br/> 민물고기연구센터 소장
박무억 민물고기연구센터 소장.

연어가 되돌아오는 계절이다. 북태평양으로 긴 여정을 떠났던 연어들이 왕피천으로 돌아오고 있다. 경북 민물고기연구센터에서는 매년 100만 마리의 치어를 방류한다. 그중 되돌아오는 연어는 단 0.1%! 자그마치 3년이나 걸려 지구 반 바퀴 거리를 헤엄쳐 돌아왔으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느라 어느 때보다 분주한 박무억 소장을 울진군 근남면에 위치한 민물고기연구센터에서 만났다.

 

매년 100만 마리의 연어 치어를 방류… 자그마치 3년이나 걸려 돌아오는 연어는 단 0.1%!

산천어·송어·다슬기·동남참게 종자도 생산해 방류… 경북 동해안 하천 생태계 조사도 함께

비무장지대서 채집한 토종 산천어 치어 사육해 국내 첫 인공 부화 성공… 내년엔 치어 방류

우리나라 고유 어종 복원·자원 회복 役 하고파… 단 1종 1마리라도 올바르게 물려주길 희망

 

-올해 연어의 귀향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처음 연어가 올라온 건 10월 17일이다. 10월 초부터 망을 치고 기다렸다. 3년 전에 왕피천에서 방류한 연어들이 미국 알래스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매년 20톤 트럭 5대 분량인 90만~100만 마리를 방류하면 0.1~0.2%가 돌아온다. 100만 마리에 1000마리 수준이다.

 

-0.1%의 확률이라니 더 반갑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먼 거리를 여행하는 연어의 신통한 능력은 어디서 오는 건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지구 자기의 흐름을 감지해서 이동한다는 ‘자기설(磁氣說)’이다. 후각으로 찾아온다는 가설도 있는데 미국에서 후각을 마비시킨 산란기 연어가 고향을 찾지 못했다는 연구가 있다.

경북 민물고기연구센터의 어린 연어 방류 모습.
경북 민물고기연구센터의 어린 연어 방류 모습.

-연어를 포획해 방류하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나.

△어미로부터 채란한 알을 소독하고, 정액을 뿌려 수정시킨 뒤, 이물질을 씻어내고 소독을 두 차례 더 한다. 알이 부화해서 크기 5cm, 무게 1.5g의 치어로 성장하면 내년 3월 하천에 방류한다. 이후 2~3달 적응 기간을 거쳐 바다로 나간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가 3년이 지나면 어른 팔뚝만 해져서 돌아온다.

 

-방류 기준이 5cm에 1.5g인 이유는.

△우선은 연구소 양식장의 규모와 서식밀도를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어린 연어가 거친 바다에 적응할 수 있는 적절한 사이즈이기 하다. 수정란에서 부화한 치어는 3~4개월 자라면 5~7cm까지 큰다. 그때 하천과 바다의 경계에 방류하면 소금물에 서서히 적응한다. 대부분의 민물고기는 바다에 나가면 바로 죽지만 연어는 염세포가 있어 생존이 가능하다. 염세포는 몸속의 염분농도를 항상 일정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연어 말고도 방류하는 물고기가 많다고 들었다.

△연어 이외 산천어와 송어, 다슬기와 동남참게 종자를 생산해 방류한다. 연어에 이어 곧바로 송어와 산천어 차례가 돌아오고, 다슬기도 방류하는 요즘이 최고로 바쁘다. 다슬기는 주민들의 소득 향상과 관광 마케팅을 위해 방류를 원하는 지역이 많아, 23개 시군을 4등분으로 나눠 차례로 진행한다. 이외 경북 동해안 하천의 생태계를 조사하는 것도 민물고기연구센터의 일이다.

 

우리나라 1세대 어류학자인 고 최기철 교수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눴다. ‘민물고기 30종 이상 아는 유망한 사람’, ‘10종밖에 모르면 평범한 사람’, ‘10종도 모르는 불행한 사람’. 민물낚시가 취미가 아닌 이상 10종 넘기기가 쉽지 않다. 민물고기 종류가 얼마 된다고 어류학자의 욕심일 뿐이라는 변명도 마땅찮다. 박무억 소장에 따르면 지구상의 민물고기는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많고 아시아에서만 700종이 알려져 있다. 민물고기연구센터가 운영하는 민물고기생태체험관에만 100종이 넘는 민물고기를 전시한다. 참고로 경북에서 많이 사는 민물고기 1위는 피라미와 비슷하게 생긴 ‘갈겨니’이다.

-하천 생태계 조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하천에 통발을 넣어 어자원 분포를 조사한다. 예전에 많이 잡히던 고유어종이 안 보이면 어미를 구입해 알을 받는 기술을 개발하고 자원을 조성한다. 경북도내 동해안 유입 하천인 울진 왕피천과 부구천, 영덕 오십천, 포항 곡강천, 경주 대종천이 조사 대상이다.

‘토종산천어’ 포획 장면.
‘토종산천어’ 포획 장면.

-예전과 비교해 하천 생태계는 어떤가.

△그 흔했던 송사리와 피라미나 풍뎅이처럼 생긴 물방개도 사라지고 새우도 안 보인다. 물고기가 산란을 하려면 알을 붙일 풀과 바위가 필요한데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파헤친 곳들이 너무 많다.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면 그 강은 이미 죽은 강이나 다름없다. 그 여파는 우리 인간에게 미칠 것이기에 우려스럽다.

 

-물고기에 관심을 갖고 어류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이고 강이 많지만, 학교의 생물교육은 주로 가축이나 수목 위주이고 물고기는 거의 없다. 서점에서 우연히 물고기도 사람이 기른다는 책을 봤는데 미래에는 수산양식 산업이 유망하고 세계적으로 10대 직업군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서적을 탐독했고 결국 고향 경주를 떠나 제주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결심했다.

 

-경주에서 제주라면 꽤 먼 데,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1982년도 대입을 앞두고 부산과 제주의 대학 두 곳을 고민했다. 부경대의 전신인 부산수산대학교는 민물 위주였고 제주대학교는 해산어 쪽인데, 이왕이면 광대하고 생물종이 다양한 바다에서 포부를 키우고 싶었다. 지도 교수였던 노섬 선생은 국내 양식업의 선구자로 전복과 광어 양식의 토대를 만든 분이다. 교수님의 지도 아래 저희 실험실에서 넙치 양식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여든이 된 노교수는 멸종 위기에 처한 해마를 대량으로 양식하는 기술을 개발해 중국에 수출하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일찍이 수산양식을 유망한 미래 산업으로 꼽았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피터 드러커는 “21세기에는 인터넷보다 수산양식에 투자하는 것이 더 유망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10대에 벌써 수산양식의 발전이 가져다줄 무한한 미래를 꿈꾼 박무억 소장의 혜안이 놀랍다. 박 소장을 지도한 노섬 전 제주대 교수(2007년 퇴임)는 국내 양식·양어 업계의 대부라 불린다. 1970년대 중반 전복 양식과 80년대 말 광어 양식의 기술을 개발해 산업화의 토대를 만들었다. 박무억 소장은 노섬 교수의 연구실에서 국내 수산양식 발전사의 궤적을 함께 걸었다.

한국형 ‘토종산천어’ 종 복원을 위한 비무장지대 내 포획 및 자원조사 후 기념촬영.
한국형 ‘토종산천어’ 종 복원을 위한 비무장지대 내 포획 및 자원조사 후 기념촬영.

-대학에서 특별히 관심가진 연구는.

△흔히 우럭으로 불리는 조피볼락의 번식기구를 제어하는 기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고기는 대부분 알을 낳지만 볼락 종류는 새끼를 낳는다. 보통 4월에 낳는데 그 시기를 앞당기면 양식어가의 소득을 높일 수 있어 연구를 진행했다.

 

-번식 시기를 어떻게 조정한다는 얘긴가.

△조피볼락은 저수온에 강한 반면 고수온에 약하다. 여름이 되기 전에 상품성 있는 크기로 길러 출하하는 기술 개발이 절실했다. 조피볼락 암컷은 교미 후에 몸에 정자를 지니고 있다가 수온이 올라가면 체내에서 부화시켜 새끼를 낳는다. 이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원리를 밝혀내어 볼락의 연중 종묘생산이 가능해졌다.

 

-요즘은 어떤 물고기에 관심이 큰가.

△송어의 사촌 격인 산천어이다. 송어는 바다에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 강으로 올라온다. 하천에서 부화한 송어 새끼가 강에 남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산천어이다. 산천어는 물이 맑은 곳에 산다. 산천어 축제로 유명해졌지만 문제는 행사장에 풀어놓은 산천어 대부분이 외래종이라는 것이다. 현재 양식장에서 기르는 산천어 대부분은 러시아와 일본의 교잡종으로, 고유종보다 우세한 추세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토종 산천어를 복원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의 비무장지대(DMZ)까지 다녀왔다. 지뢰 매설 위험지역을 피해 가며 채집했는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무장지대의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비무장지대 내 계곡에서 채집한 토종 산천어 치어를 민물고기연구센터에서 사육해서 국내 최초로 인공 부화에 성공했다. 내년에 치어를 방류해 토종 산천어 보급에 나선다.

 

-지구의 진정한 터줏대감은 물고기라는 말이 있지만 물고기의 터전은 점점 위태롭다. 물고기 연구자로서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물고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환경변화를 미리 예측하는 지표종이기도 하다. 환경오염과 기상이변으로 강은 말라가고 토종 물고기는 멸종 위기다. 다양한 생명체의 원천이자 근거지인 수변 생태계 보호가 절실하다. 사라져가는 우리나라 고유 어종의 복원하고 자원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다. 우리 물고기를 단 1종 1마리라도 올바르게 물려주기를 희망한다.

 

박무억 소장은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고등학교를 다녔다. 군인이 되어 이름을 빛내라고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지만 물고기 연구에 푹 빠져 산 지 30년이 넘었다. 제주대학교 양식학과(현재는 해양생명과학과와 수산생명의학과로 나눠짐)에 진학하여, 노섬 교수의 지도 아래 국내 양식 산업 발전에 힘을 보탰으며, ‘조피볼락의 출산 조절을 위한 번식기구 제어’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덕에 위치한 경상북도 수산자원연구원에서 20여 년 근무했고, 2년 전 민물고기연구센터로 왔다. 물고기를 살리는 일을 하다 보니 낚시는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키운 걸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고 배웠기에 생선을 즐기지도 않는다. ‘바다개척자’라는 의미를 담은 영문 이메일 주소를 사용한다.

 

/배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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