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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 살아있는 영덕 괴시마을을 찾아서

허명화 시민기자
등록일 2022-11-01 18:18 게재일 2022-11-0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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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히 들어선 기와지붕에 멋들어진 한옥, 긴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품은 담벼락과 골목과 마을 오른쪽 끝 지점의 마을이 생성된 역사와 같아 보이는 수령이 450년이 넘은 큰 왕버들 나무까지 꼭 민속촌에 온 느낌이 든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위치한 괴시마을은 시간을 수백 년 전 조선시대로 시간을 되돌려놓는다. 처음 함창 김씨가 터를 잡은 마을은 1630년경부터 영양 남씨의 집성촌이 되었고 단일문중의 문화와 역사를 계승하고 지금껏 삶의 편리함 대신 옛것들을 소중히 보존해 와 마을 전체가 전통이 살아있는 대표적인 반촌(班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은 현재에도 대부분 실제 거주를 하고 있고 운치있는 전통 가옥들은 조선 시대 건축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어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높아 2021년에는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인정을 받았다. 이를 통해서 조선후기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의 건축문화가 태백산을 넘어 동해안까지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 되어 주고 있다. 경북에서 하회마을, 양동마을, 무섬마을, 한개마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지정되었다.

괴시마을은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삼은(이색, 정몽주, 길재) 중 한 사람인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이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목은 이색과 영덕 괴시리 마을의 인연은 그의 부친인 가정 이곡 (1298~1351)이 학문 교류를 위해 영해를 찾아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곳에는 3대에 걸쳐 문하시중을 배출한 영해 박씨의 박세통, 박홍무 등을 비롯해 영해부사로 온 윤신걸, 사록으로 온 우탁, 백문보 등 많은 유학자들이 있었다. 영해에 온 가정 이곡은 영해 향교의 대현인 김택의 사위가 되었고 이색을 괴시리마을 무가정에서 낳았다. 마을 뒤쪽 언덕을 오르면 목은 이색의 생가터인 무가정이 있는데 건물은 사라지고 터를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생가터 옆에는 작지만 목은 이색의 일대기와 그의 저서가 전시된 기념관이 이 있다.

괴시는 회나무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인데 원래는 마을 이름이 늪이 많다 하여 호리촌이었으나 원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목은 이색이 그의 벗인 구양현의 고향 괴시와 비슷하다 하여 고쳐 불렀다. /허명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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