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br/>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수강생에서 박물관 수장으로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경주에서 시작해서 다시 경주에서 마무리하게 되어 행운이다.”
지난 8월 31일 자로 신임 국립경주박물관장으로 부임한 함순섭 관장의 말이다.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유적지를 놀이터 삼아 성장했고, 69년 역사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에서 연구자의 꿈을 키웠다. 경주라는 문화적 토양을 자양분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다. 경주가 자신을 키웠으니 이제는 돌려줄 차례라고 말하는 함순섭 관장. 그에게 경주는 그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1954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 어린이 박물관 교육프로그램
경주어린이향토학교 시절 중·고등부 만들어진 후 꾸준히 수강 자연스럽게 진로 정해
수강하면서 신라금관 비밀 밝혀 달라던 당부 오래도록 뇌리 남아 신라 금속공예 전공
체계적 어린이교육시스템 선도·모든 이들이 차별없이 이용하는 환경 만들어 나갈 것
-학창 시절을 보낸 경주로 돌아온 소회는.
△신라 고분이 밀집된 황오동에서 자랐다. 집에서 황남대총 발굴 현장이 보였고, 친구 집 안방 자리에서 발굴이 이뤄졌다. 지금의 나를 만든 토대는 내가 태어난 경주와 어린이박물관학교이다. 정년이 2년여 남았으니 시작한 곳에서 마무리하게 된 셈이다.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는 어떤 곳인가.
△1954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이다. 진홍섭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 분관장과 윤경렬 향토사학자가 만들었다. 첫 강의실은 박물관장실이었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했던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환등기로 영화를 관람하고, 슬라이드로 문화재 사진을 봤다. 대구미문화원에서 영사기와 영화필름을 매주 빌려왔다고 한다. 운영규칙이 셋 있는데,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어떠한 명목으로도 돈을 받지 않는다. 수업은 존댓말로 한다는 것이다. 관장이 바뀌고 박물관을 나와야 했던 ‘경주어린이향토학교(1962-75)’를 거쳐, 1975년 현재 위치인 인왕동 신축 박물관으로 이전했다. 세계적으로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박물관 사회교육 프로그램은 드물다.
-90년대부터 박물관장이 어린이박물관학교 교장을 겸하고 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한 셈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기억이 남아있나.
△경주시립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수업하던 경주어린이향토학교를 다녔다. 인왕동으로 옮기고 거리가 멀어 그만뒀다가 중학생 때 친구들에 이끌려 다시 나갔다. 참여를 원하는 중학생들이 늘어나자, 1981년에 중·고등부가 만들어졌다. 경주박물관회 초대 회장을 지낸 김원주(1930~2007) 선생이 삼국유사 강독을 했는데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와서 듣기도 했다. 청소년기 박물관학교는 안 가면 섭섭한 토요일의 일상이 됐고, 자연스럽게 박물관 계통의 일로 진로를 정했다.
-박물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길을 걸어왔네.
△중학교 초반까지는 그림에 푹 빠져 지냈다. 화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계림은 그림 그리기 좋은 곳이었고 화가들도 많이 찾았다. 경주는 문화적인 소양을 피부로 느낄 수 있고, 언제든지 미술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남한 최초의 예술전문학교인 ‘경주예술학교(1946-1952)’가 세워진 곳도 경주다. 우연히 일본에서 계림을 화폭에 담은 김창억 화가(전 홍익대 미대 교수)의 작품을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경주예술학교를 다닐 때 그린 거였다. 경주예술학교는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탄생에 영향을 끼쳤다. 경주예술학교가 와해되고 좌절을 느낀 윤경렬 선생이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다.
-경주는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재가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신라 금속공예를 전공한 이유는.
△정양모 전 경주박물관장이 박물관학교 수강생들에게 신라금관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때 금관의 화려함과 독특한 디자인에 매료됐다. 제대로 된 금관 연구자가 없어 안타깝다며 비밀을 밝혀달라던 당부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금관을 복제하던 삼선방을 들락날락했던 경험도 소중하다. 삼선방은 경주박물관학교 1회 출신인 김인태 금속공예명장의 공방으로 어릴 때부터 드나들며 금관의 제작기법을 가까이서 봤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유효웅 도예명장이 작업하던 동방요(현재 신라요)가 친구 집이었다. 남들은 교과서로 배우는 유물의 제작 기법을 이웃이나 친구 네에서 실물을 보며 익히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그런 경험이 나의 귀중한 자산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전국 국립박물관 건립에 참여한 이력이 눈에 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김해와 대구국립박물관 개관에 참여했다. 문화재나 공방 답사를 다녀선지 도면 보는 감각이 괜찮은 편이다. 어지간한 기술직 못지않다고 ‘학예 기술직’이라는 우스갯말도 한다. 박물관 시설의 효율적인 배치나 보존환경에도 관심이 많다. 항온과 항습을 유지해야하는 박물관은 에너지 소비량이 크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90년대만 해도 전기료를 체납할 정도로 국립박물관 재정상황이 열악했다.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머리를 싸매야했다.
-명색이 국립박물관인데 사정이 그 정도였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하기 시작한 1991년, 첫 월급이 37만 원이었다. 생선 도매상이던 어머니가 10배는 더 벌었다. 내 월급을 보고 웃으시더라. 서울서 직장 다니던 친구들의 절반 수준으로 박봉이었고 운영 예산도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과 영남권 국립박물관을 두루 거치며 기획한 전시가 다수다.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황남대총을 통해 신라 마립간 시기를 조명한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 황남대총’(2010)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나의 왕릉을 주제로 한 첫 특별전이었고, 전시 기간에 도록이 완판 되는 당시로선 드문 기록을 세웠다(감사하게도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내 전공분야인 만큼 한 걸음 더 나아가려 노력했다. 고고학은 일본 학계의 주장이 여전한 분야다. 그걸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기존 연구와 새로운 주장, 기획자로서 시각을 담은 세 편의 논문을 나란히 실었다.
우리가 아는 고고학 자료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것이다. 박물관이라는 단어 자체도 ‘Museum’의 일본식 번역이다. 식민지 고고학의 그림자는 앞으로 학계가 극복해야 할 화두이다. 일제강점기에 부실하게 이뤄진 조사가 다시 연구되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함순섭 관장의 학문적 관심은 일제에 의한 고적조사를 비롯해 해방정국으로 이어지는 경주의 문화운동 전반으로 뻗어나간다. 그것이 자신을 키운 경주에 대한 연구자 본연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은.
△90년대부터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를 연구했다. 오로지 유물만 대상으로 한 평면적인 연구를 넘어 발굴과 조사 과정을 입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다. 결국 유물이 출토된 일제강점기와 역사적 맥락이 이어지고 그걸 파헤치다 보면 관변단체인 경주고적보존회까지 닿는다. 그렇게 조사 범위를 넓히는 과정을 통해 지식은 총합된다. 유물 배후의 모든 맥락을 조사해야 연구가 풍성해진다.
-다방면의 관심사를 대중과 칼럼으로 소통한다. 오랫동안 갈고닦는 글 솜씨가 돋보인다.
△박물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다. 대중적으로는 유홍준 교수가 유명하지만 부석사에 대한 글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쓴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1916~1984)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윤독하려 애쓴다. 이영훈 전 국립중앙박물관장도 후배인 내게 글을 보내오곤 했다. 교정할 때는 선후배도 없다. 직급도 권위도 내세우지 않는 윤독의 전통이 국립박물관에 이어 온다. 전시 설명문은 연구자 전원이 최소 6차례 윤독을 한다.
-마음을 울린 유물이 있나.
△전시된 유물보다 발굴할 때 자주 본다. 흙을 파다 보면 흙 색깔이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아래 뭐가 묻혔느냐에 따라 흙 색깔이 다르다. 칠이 된 그릇은 노출되면 사라진다. 수습할 수 없으니 발굴자만 볼 수 있는 유물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와서 세 가지만 보고 가야 한다면.
△성덕대왕 신종과 신라 금관, 백률사금동약사여래입상이나 미륵삼존불(남산 장창골 출토)을 추천한다. 불상이 전시된 신라미술관은 전시환경 개선 공사로 12월 초까지 휴관한다. 불교조각실을 신설해 이전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으니 기대해 달라.
-국립경주박물관 수장으로서의 포부는.
△국립박물관 수준은 여러모로 세계적이다. 디지털 콘텐츠 부분은 최첨단이고 설비도 마찬가지. 경주 지진에도 유물 손상은 없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교육시스템이다. 선진국에선 박물관에서 교육받은 교사에게 1차로 강의를 듣고 관람한다. 어린이박물관학교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경주박물관이 선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퇴임까지 2년 3개월이 남았는데 욕심낼 기간은 아니다. 차별화된 전시 기획으로 경주만의 흥미로운 전시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기본. 장애인 편의시설을 보강해 모든 이들이 차별 없이 이용하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더불어 직원들이 마음껏 쉴 공간도 마련하고 싶다. 그것만 제대로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함순섭 관장은
경북대학교에서 신라 금관을 비롯한 삼국시대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전시팀장을 맡아 용산 이전부터 개관까지 전시를 총괄했다. 경주에 오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신설되는 박물관으로 발령받아, 이외에도 국립대구박물관과 국립김해박물관의 개관을 맡았다. 기획한 주요 전시로는 ‘쇠, 철, 강’, ‘한국의 허리띠, 끈과 띠’ 등이 있다.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개관 5주년 기념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 황남대총’ 특별전은 국립박물관 전시 지평을 새롭게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8월, 국립경주박물관 신임 관장으로 부임했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국립경주박물관을 통해 신라를 경험하고 신라에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배은정
1974년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사학과 졸업. TBC·포항MBC·경북교통방송 작가. ‘포항문화의 상징과 공간’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