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無信不立

등록일 2022-08-22 18:08 게재일 2022-08-23 18면
스크랩버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언제나 그렇듯이 자전거를 타고 탁 트인 강변을 달리는 기분은 가뿐하기만 하다.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 결에 철마다 피고지는 꽃들이 특유의 웃음으로 반기고, 강물을 활주로 삼아 날아오르는 오리들의 날갯짓은 라이딩 마냥 가볍고 활기차 보인다. 그렇게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강둑에 줄지어 선 백일홍과 무궁화꽃의 환호(?)를 받으며 자출을 하거나 한가로이 주말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여유롭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주위를 완상하는 자전거 타는 풍경은, 어쩌면 낭만적이다 못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해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모처럼만의 여유로운 휴일을 맞아 나홀로 라이딩을 나선 것은 그냥 바람이나 쐬기 위함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두 바퀴를 굴리며 오가는 강둑길이지만, 무엇인가에 쫓기거나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페달을 밟으며 두리번거리다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이색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길섶에서 간간이 자전거 바퀴에 채일 듯 튀어오르는 방아깨비나, 멈춘 듯 흐르는 수면 위를 뛰어오르는 물고기의 비약을 달리는 중에도 얼마든지 눈으로 스캔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거나 오래 보지 않아도 익숙한 길에서는 이처럼 다채롭게 보이거나 들리는 것들이 많아서 한편으론 따스한 시선이 오래 머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핸들을 틀어 형산대교를 건너고 구룡포 방면의 대로변으로 지나가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P사나 H사의 부지경계 측면의 가로수나 가로등 등의 기둥에는 요즘 때아닌 대자보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초긴장의 형국이다. 입추가 지났어도 초록에 지쳐 단풍 들기는 아직 한참 이른데, 이곳뿐만이 아니라 포항시내 전역에는 붉고 누런 현수막의 물결이 마치 단풍처럼 울긋불긋 외치듯이 펄럭이고 있으니 이 무슨 기현상일까? 더욱이 핫플레이스 명소 등으로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여름 관광철에 난데없이 엇비슷한 색깔과 다소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이 길거리를 온통 도배한 듯하니, 사뭇 의문과 역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지난 2월의 요원의 불길 같은 현수막의 난립과 악몽이 재연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無信不立)는 말은, 개인의 관계나 직장, 사회생활은 물론 정치에서조차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서로 굳게 믿고 의지하는 신뢰(信賴)가 아닐까 싶다. 지난 2월에 공식적인 약조가 있었고 또 과거 수십년간 지역상생과 동반성장의 기치로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해 왔음에도, 이런 식의 일방적·배타적 논리와 주장은 결코 시민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여름의 문서를 벽장 속에 넣어 마감한다는 처서인 오늘, 칡과 등나무 줄기를 잘 추스르고 악담대신 악수로 마무리하여 자전거 두 바퀴처럼 잘 굴러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心山書窓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