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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계속해 나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

등록일 2022-08-22 18:06 게재일 2022-08-2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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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듯 시작한 밴드 ‘공중그늘’
‘공중그늘’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자리한 그들의 작업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 연남동의 한 건물. 지하로 들어가는 문을 열자 밴드 ‘공중그늘’의 작업실이 펼쳐졌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하게 꾸려진 창작의 공간에서 4명의 멤버와 마주 앉았다. 멤버들은 시종일관 밝고 선명했다. 인디 음악가의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예술적 고뇌 대신 자신들이 지향하고 표현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노래와 기타를 맡은 이장오와 드럼을 연주하는 이해인은 형제다. 기타를 치는 경성수와 베이스의 이철민까지 넷은 모두 어릴 적 친구사이다. ‘공중그늘’은 2016년 결성됐다. 거창한 시작은 아니었다고 한다.

 

모두 어릴 적 친구사이인 네 멤버

‘생산적으로 놀자’며 밴드 결성해

앨범 ‘연가’ 2021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 후보에 올라

“대중에게 인기 있는 노래보다는

어떤 곡을 들려주고 싶은지 집중”

포항출신인 이장오·이해인 형제

“청하에서 뛰어논 행복했던 기억”

27일 포항문예회관 콘서트 예정

-어떻게 밴드를 하게 됐어요?

△(이장오) 청소년기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에요. 놀던 사이죠. ‘뭔가를 좀 같이 해 볼까? 어차피 매일 같이 모여 있는데 생산적인 걸 해보면서 놀아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 시작한 것 같아요. ‘그냥 놀듯이 하자’ 이렇게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밴드의 SNS 관리나 대외 홍보는 해인이 맡고 서류 작업은 장오가 한다. 음반 심의 의뢰 등은 철민의 담당. 성수는 공연과 관련한 소통을 도맡아 한다. 대부분의 인디 밴드가 그렇듯 가내수공업이다. 화제가 됐던 ‘포크음악의 대모’ 장필순과의 협업 과정도 단순했다.

△(이해인) 편곡을 할 당시에 ‘여기에 장필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어가면 진짜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락을 드려볼까 하는데 되게 사실 망설여지는 일이잖아요. 근데 좋은 음악을 만들어서 존경하는 음악가한테 같이 하자고 하는 게 죄는 아니니까(웃음) 그냥 연락을 드려볼 수도 있지 약간 이런 생각으로 연락을 드렸던 거고 해주실 거라고 크게 기대는 안 했었어요.

‘놀 듯’ 시작한 밴드는 어느새 청춘의 진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다. 2018년 발매한 싱글 ‘선’에선 경쾌하고 감각적인 연주 위에 대상과 닿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가사로 얹었다. 같은 해 발표한 ‘산책’에선 ‘우리는 길을 잃었지만 산책이라 부르지’라는 가사와 희망적 멜로디를 통해 방황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노래했다. 독보적인 스타일과 문학적 가사는 평단과 인디 씬의 주목을 받았다.

‘공중그늘’ 파수꾼 뮤직비디오 캡처,
‘공중그늘’ 파수꾼 뮤직비디오 캡처,

-스타일이 상당히 독특해요.

△(이해인) 저희 스타일이 막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런 거라기보다는….

△(경성수) 굳이 우리를 따라하지 않는 것 아닐까?(웃음)

△(이장오) 저희는 정규적인 작곡을 배워서 쓰는 스타일의 곡들이 아니라서 좀 더 자유로운 부분은 있어요.

정규앨범 ‘연가’는 지난해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 부문 후보에 올라 ‘섬세한 표현력과 몽환적 스타일을 내세워 음악 안팎에서 매혹적인 감응을 이끌어 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음악 자체와 더불어 비주얼 요소를 포함하는 공감각적 표현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공중그늘의 뮤직비디오는 실사(實寫) 대신 일러스트가 주를 이룬다.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에요. 종합예술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주얼 작업에 공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장오) 실사 보다 일러스트를 이용해 표현하는 것이 저희와 결이 맞는 것 같아요. 음악을 깊이 있게 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라는 생각보다는 작가주의적인 작업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그걸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기 위해 시각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뮤직비디오 작업에 특히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실사보다 표현이 자유롭고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들에게도 해석의 여지가 넓은 일러스트를 선택했단 얘기다. 첫 싱글이자 대표곡으로 꼽히는 ‘파수꾼’의 뮤직비디오에선 자칫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입체적인 도형들이 공간을 떠돈다. 선과 면으로 단순화된 오브제들이 반복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지난 2019년 11월 22일 열린 첫 단독 공연 모습.
지난 2019년 11월 22일 열린 첫 단독 공연 모습.

△(이해인) 사실 어떤 일의 결과라는 것이 조금 허무할 수도 있고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일을 묵묵히 계속해 나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예요. 파수꾼의 일처럼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꾸준하게 하는 것이요. 이런 생각을 비디오 작가님과 나누면서 나온 시각적인 아이디어예요. 반복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 이유에요.

이들의 음악은 몽환적이고 부유하는 듯 한 정서의 연주 위에 과하지 않은 담담한 가사가 얹혀 있다. 순수하고 문학적인 가사는 어쩐지 인디음악 스럽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창작물은 기성의 장르에 맞춰 정의하기 어렵다.

-장르를 굳이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이해인) 제가 그냥 우스갯소리로 ‘굿보이 사이키델릭’이라고(웃음) 저희도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어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데 사이키델릭이라고 하면 날이 서 있고 그런 이미지인데 ‘너희 음악 정말 착하다’ 이런 얘기를 되게 많이 들어요. 사실 저희가 명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곡은 슬픔이나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너무 감정에 함몰돼 있지 않게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사이키델릭: 환각적·몽환적 분위기의 록 음악 장르)

대중음악 씬에서 밴드가 귀해진 마당이다. 그렇기에 경연 프로그램을 비롯해 인기 매체에서의 섭외 요청도 수시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 오랜 친구들은 달콤한 유혹을 모두 거절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 같단 이유에서다.

밴드 ‘공중그늘’ /‘공중그늘’ 제공
밴드 ‘공중그늘’ /‘공중그늘’ 제공

-오버그라운드에서 호출이 오면 나설 의향이 있어요?

△(이해인) 섭외가 많이 왔었어요. 특히 경연 프로그램에서요. 그런데 다 거절했어요. 저희 음악이 퍼포먼스 자체로 사람들한테 엄청나게 인상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 멤버들 성격 자체도 경연에 적합하지 않아서(웃음)….

△(이장오) 다들 좀 내성적인 편이기도 하고 또 곡 같은 거 선정할 때도 음악가로서의 자존심 같은 걸 굉장히 생각하는 편이라서 대중한테 어떤 곡이 인기가 좋을까보다 어떤 곡을 들려주고 싶은지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요.

함께한 시간만큼 멤버들의 우애도 각별하다. 작사와 작곡은 개인이 하지만 발표는 밴드 이름으로 한다. 한 멤버가 곡을 스케치 해 오면 함께 다듬어 가며 완성해 가는 식이다. 제각기 개성을 담아 곡을 쓰지만 앨범 안에선 일관성이 느껴진다.

-작사·작곡이 공동으로 돼 있어요.

△(이장오) 스케치를 만들어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작곡했다고 하는 게 되게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 같고 또 그냥 사이좋게 오래 하는데도 같이 이름을 올리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싸우진 않아요?

△(이장오) 엄청 많이 싸워요. 또 그렇게 싸우고도 다시 풀릴 수 있는 정도 관계라서 계속 함께 하는 거 아닐까요. 저희는 보통 누군가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욕구 보단 누군가가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욕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이에요. 그래서 한 사람이 진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면 저희는 안 하려고 그래요. 하기 싫은 일을 하다 보면 오래 함께 하기 힘든 것 같더라고요.

멤버 중 누군가의 ‘하고 싶지 않은’ 욕구를 존중하며 6년 째 섬세한 창작물을 묵묵히 만들어 가고 있는 이들. 지난 4월 발표한 ‘모래탑’에선 밴드의 자전적 읊조림이 들린다.

“우리는 모래탑을 쌓을 거야

바람에 흩날려 작아지더라도

때로는 헤매는 사람들의

멀리서 반짝이는 꿈인거야.”

장오·해인 형제는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이다. 청하면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향이 주는 영감이 있나요?

△(이해인) 저는 청하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요. 저희 집이 나무 농장이었거든요. 넓은 농장에서 매일 놀았어요. 학원도 없었고요. 여름이면 바다도 거의 매일 갔거든요. 그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아 있어요. 시골에서 자연을 느꼈던 것들이 표현에서 조금씩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이장오) 포항에서 가장 답답했던 게 문화 격차가 너무 크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어요. 문화적인 지원이 많이 필요하겠죠.

밴드 ‘공중그늘’은 오는 27일 오후 5시 포항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연다.

 

이재중

TV조선 탐사보도부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파리 테러, 네팔 대지진, 로힝야 사태 등 국제 분쟁·재난 취재를 해 왔다. 국제부와 사회부 법조팀 등을 거쳐 현재 탐사보도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2016 한국기자상 대상, 2017 관훈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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