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기록적인 폭우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에 휩쓸려 실종된 사람,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집에서 사람만 간신히 빠져나와 목숨을 건진 경우 등 안타까운 사례가 보도되고 있다. 특히 신림동 반지하에 살고 있던 가족 3명이 사망한 사건이 주목을 받았다. 그중 한 분이 장애가 있다는 보도에, 장애와 가난, 반지하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소비되고 있다.
반지하와 가난, 그리고 홍수는 영화 ‘기생충’을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비는 부자에게는 낭만의 대상이지만, 기택네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대상이다. 엄청난 폭우에 반쯤 잠긴 집에서 물을 퍼내던 기택 부자의 절박함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사장의 저택에서 문광의 남편이 기택의 아들과 딸을, 기택이 사장을 죽인다. 그리고 영화는 건강을 회복한 기우가 사장 집에 기생하고 있는 기택에게 부자가 되어, 그 집을 사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을 보여주며 끝난다. 그러니까 ‘기생충’은 대한민국의 빈부격차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부자’가 되고 싶다는 공통의 욕망에 초점을 둔 것이다.
반지하에 살던 가족 3명이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바로 그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레이트 선셋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아름다운 석양을 활용한 한강의 재발견 사업으로 ‘서울 아이’ 같은 대규모 관람차와 수상 공연장을 짓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싱가포르, 영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프로젝트로 최대 10년의 공사 기간이 필요한 사업이다. 서울에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서울시민에게 질 높은 문화콘텐츠를 제공한다는 발표에서, 2009년 용산 참사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세르주 라투슈는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에서 성장 위주의 경제 패러다임을 빈부격차와 환경 파괴의 원인으로 제시하며, 탈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성장 중심의 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황당한 논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의 사태는 그 논의에 귀 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현재 강남은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 늪지대를 아파트로 바꿔서 탄생한 지역으로 홍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장 중심의 사고는 경제적 이익과 거리가 먼 홍수 예방 사업에 예산 투입을 주저하게 했다. 성장 중심이란 쉽게 말해 돈이 되는 일만 선별해서 자본을 투입하는 효율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이익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했지만, 이번 비극이 보여주듯 지금껏 거의 지켜진 적이 없다.
전례 없는 폭염과 홍수, 산불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이 초래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자연과 공생하고 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성장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의 이상징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가까운 미래에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