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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걸출한 문인, 한흑구 선생

등록일 2022-08-15 18:05 게재일 2022-08-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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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40여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고교시절 문예실 주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포항문학’ 창간호. 그 책에 실린 ‘한흑구 선생 특집’란의 글을 읽고 흑구(黑鷗) 한세광 선생을 우연찮게 알게 됐다. 그리고 지난 주, 포스코국제관에서 열린 한흑구 문학의 장르별 조명과 한국현대문학사의 의의를 다룬 ‘한흑구 문학연구 학술대회’에서 한흑구 선생의 진면목이 뇌리에 각인됐다. 한참의 세월을 거슬러 책을 통해 본 문인을 학술대회에서 제대로 알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한흑구 선생은 명작 ‘보리’ 수필 외에도 시, 소설, 평론, 번역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문학세계와 명징한 작품을 창작했음에도 문학작품과 공적이 제대로 조명, 평가되거나 예우받지 못한 은둔의 문학인으로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평양과 미국을 오가며 선구적 지성과 폭넓은 문학관으로 한국문학을 새롭고 풍요롭게 만들면서도 단 한 토막의 친일 문장을 쓰지 않은, 의지와 불굴의 지사형 문학가였다.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도한 흥사단의 활동가로서 민족독립을 위해 1년여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일제식민지 시대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길을 걸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특히, 한흑구 선생의 수필은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독특함으로 우리나라 수필문학 성립기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수필은 말 그대로 독백의 문학이기에 자신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것에 우의(寓意)하여 객관의 세계를 묘사하게 되는데, 선생은 나무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바다를 통해 우주를 설명하며 시적인 비유와 상징, 풍자의 수사법으로 서정성과 간결성을 더해 수필의 완숙도를 높였다. 60, 70년대의 교과서에 2편의 수필이 실린 정도로 선생은 민족혼을 일깨우며 자연애와 시적인 수필세계로 근대 수필론 정립에 크게 기여한 걸출한 문인이요 관조적 사색가였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한흑구 선생의 생시나 현재까지 그의 문학적 업적을 제대로 평가, 인정받지 못했고, 그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니와 정부에서조차 추서한적이 없으니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 중심의 중앙문단에서 벗어나 외진 포항에서 주변 장르인 수필을 주로 발표한 변방성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과 문단의 비평에서 다소 벗어났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탄생 100주년인 지난 2009년, 민충환 문학평론가에 의해 ‘한흑구 문학선집 1·2권’이 출간돼 한흑구 문학의 꽃이 부분 개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에 ‘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2022년 3월 출범, 포항시와 함께 선생의 문학세계와 문학사적 의의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하여 문학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본격적으로 기획·추진 중이라 하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사상, 철학, 문학에 대한 다층적인 탐색과 깊은 연구를 통해 ‘한흑구문학관 건립’ ‘한흑구 문학 정본전집 발간’ 등 의미있는 사업추진으로 포항의 뿌리깊은 문화자산과 정체성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정표가 돼야 한다. 한세광 선생은 포항문학과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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