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에 내연산 계곡을 찾았다. 녹음이 깃들고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골짜기가 싱그럽기만 하다. 이른 아침부터 보경사를 찾거나 계곡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걸 보니 확연히 일상의 리듬이 되살아난 듯하다. 코로나19에 억눌린 답답함을 바람 결에 날려 보내고 얼룩진 마음을 청아한 계류(溪流)에 씻어내려는 듯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밝게만 보인다.
경북 3경의 하나로 꼽히는 내연산에는 약 14km에 이르는 기암절벽의 골짜기를 따라 다양한 형태의 12개 폭포가 줄지어 있는 아름다운 갑천계곡이 있다. 연산폭포나 상생폭포 등은 협곡 사이로 물줄기가 나는 듯 떨어지는 비경으로 겸재 정선이 그린 ‘내연삼용추도’의 배경이 되기도 했었고, 천년 고찰인 보경사에는 원진국사비 등의 보물이 있는 등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재의 보고이기도 하다. 또한 계곡 곳곳에는 사연이 깃든 옛 자취들이 또 다른 보물처럼 남아있어서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보경사 앞을 지나 상가 쪽으로 흐르는 중산보(中山洑)가 400여년 전에 설치되고 보수한 공덕을 기린 송덕비가 길섶에서 반기고, 내연산을 지키는 남녀 산신을 모신 ‘내연산 산왕대신지위’ ‘고모당신지위’ 비석이 제단과 함께 조성돼 있는가 하면, 깎아지른 바위굴의 협암수로(挾巖修路) 유공비 등이 한적한 옛길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
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거나 모르고 지낼 수밖에 없는 옛 자취에 유독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고 가꿔 나가는 손길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문화재나 유적, 유산을 소중하게 보호하고 돌보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인식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애써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선조들의 얼과 삶을 반추하고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사유의 폭을 넓히며 답사와 학습, 돌봄과 보전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포스코 문화재돌봄봉사단(약칭 포문돌)’이 그들이다.
포문돌은 포항시 지정 및 비지정 문화재 등의 문화재를 보존하여 포항시의 역사와 전통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2020년 5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과 문화재 가치, 문화의식 함양 교육, 주변 환경정화 활동 등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방치, 열화, 훼손되지 않도록 유지, 보존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만해도 장기면 마현리 장사랑훈도이눌공 사적비의 이정표와 안내해설판 설치, 석곡선생 묘소 이정표 보수, 칠포리 암각화군 주변 수목정리와 해설판 설치 등의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했었다.
옛것을 소중히 여겨 성의껏 돌보는 것은 단순히 문화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옛 자취를 보듬는 손길에는 옛것을 본받고 배워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근본을 잃지 않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마음이 배여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고 알리며 보존의 가치를 높여 나가는 의미 있는 행보에 박수를 보내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하기를 짐짓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