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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외면해도 되는 국민은 없다

등록일 2022-06-26 20:11 게재일 2022-06-2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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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6·25전쟁 제72주년이었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지켰다. 이 나라가 자랑스러운 건 눈부신 경제 발전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를 끝까지 지켜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리와 싸우거나, 싸운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까지 추적해 진실을 밝히고 있다. 피아가 뒤섞인 전쟁 통에 비무장 민간인으로 이리저리 동원돼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을 밝혀주려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외면해도 될 만큼 하찮은 생명은 없다.

전쟁의 폐허에서, 보릿고개를 넘어 경제 개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다. 어떤 이념이나 국가주의도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인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은 매우 실망스럽다. 민주화운동의 상징 같은 정치인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건의 진실은 조사해 밝히면 된다. 그렇지만 생각의 기본 틀은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공무원) 피살 사건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급한데 이게 왜 현안이냐.” 우 위원장의 발언은 개발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던 논리와 너무 닮았다.

왜 민주화를 했나.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문재인 전 대통령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민생을 내세워 입을 막을 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설명해줘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민주화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해명해야 한다.

우 위원장은 또 “해당 공무원의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냐”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월북(越北)’을 ‘삼팔선 또는 휴전선의 북쪽으로 넘어감’이라고 풀이해놨다. 말 그대로 이대준 씨가 북측 수역에서 발견됐으니 ‘월북’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월북’보다 본인의 ‘의지’다. 그게 중요하지 않은 일인가.

우리 사회에서 ‘월북’은 북한으로의 귀순을 의미한다. 전쟁 상태인 적국에 투항한 것이고, 대한민국을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다. 6·25전쟁 시절 월북자 가족은 연좌제를 통해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없어졌다고 해도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의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눈으로 본 우 위원장이 할 말은 아니다.

월북이 첩보 판단의 문제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더구나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발적인 월북은 유죄 판결보다 더한 ‘낙인’이기 때문이다. 과거 간첩 사건을 재심하면서 고문이나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를 배제하면서 뒤집었다. 적어도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있는 문제라면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정리하는 게 옳다. 편의에 따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희생돼도 좋을 만큼 하찮은 인권은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시 유족에게 편지를 보내 “진실이 밝혀져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묻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직접 챙기겠다, 항상 함께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도록 방치했다. 행정법원은 관련 서류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관련 서류를 모두 대통령 기록물로 분류해 15년간 열어보지 못하도록 봉인해버렸다.

고 이대준 씨는 도박 빚이 부풀려지고, 공황 상태에서 월북한 인격파탄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 가족은 월북자의 가족이라는 굴레를 써야 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이 없고, 문서도 감췄다. 북한은 범죄자가 탈북해도 송환을 요구한다. 우리 정부는 이대준 씨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북한 측이 이 씨를 발견한 것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 6시간여 뒤 총격하고, 소각했다. 그 사이에 정부의 조치는 알려진 게 없다. 국민이 위험한 처지인데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피해자만 비난한다면 그건 나라도 아니다. 적어도 잘못이 있다면 사후에라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본사고문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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