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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말 잘 듣는 검찰 만들기 아니다

등록일 2022-05-22 20:09 게재일 2022-05-2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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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검찰총장 임기제는 1988년 12월 만들어졌다. 그해 13대 총선 결과 출범한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는 정치개혁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검찰총장 임기제다. 그만큼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이 사건이 폭로되고, 실상이 드러나는데 검찰의 역할이 컸다. 경찰이 곧바로 사체를 화장하고 은폐하려 했으나, 최환 부장검사가 중앙일보 기자에게 흘려 기사화했고, 사체를 보존해 부검토록 했다. 이런 배경 속에 평민당 등 야당과 대한변협이 임기제를 밀어붙였다.

그때는 검찰총장이 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것도 비판받았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장관으로 기용됐다. 대선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한 데 대한 보은으로 비쳤다. 비판 논리의 하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상하관계로 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검찰총장이 재임 시절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사하고, 영전을 노리게 만드는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문제를 거론하기도 민망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적 압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만들어냈을 정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총장이) “내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었다”, “(윤 총장이)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해가지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고 한 음절씩 조롱하듯 강조해 말했다. 검찰총장을 정권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이 없는 상태에서 취임 하루 만에 검찰 인사를 대대적으로 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요직으로 복귀시켰다. 문재인 정부에 가까웠던 검사들은 모두 한직으로 쫓겨났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적 충성을 강요하며 인사권을 휘두른 걸 생각하면 왜곡됐던 검찰을 정상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 장관은 “정치검사가 출세한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지난 3년이 가장 심했다”고 반박했다. 추 장관 시절 검찰 인사에 대해 언론은 ‘윤석열 사단 대학살’, ‘윤석열 사단 학살 넘어 전멸’이라는 제목들을 달았다. 박범계 법무 때도 ‘윤석열 사단 거리두기와 친정권 검사 요직 배치’라는 제목이 나왔다. 윤석열 총장도 “나는 식물총장”이라고 했다.

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제공했다 하더라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는 나쁜 선례를 쌓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한꺼번에 냉탕과 온탕으로 보직을 바꾸게 되면,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보이지 않게 정치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매우 중요하다. 수사권을 박탈한다면 그것이 검찰이건 아니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경찰의 성격상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 또 통제되지 않으면 민주당이 검찰에 대해 우려하는 이상으로 위험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오랫동안 지적됐다. 정치의 중심을 국회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도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이뤄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통령의 힘을 수평적으로 국회에, 수직적으로 지방정부에 더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는 만들어져 있다. 의회 중심 정치에서 가장 우려하는 게 부패다. 가뜩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더 큰 권력을 넘기려면 정치인의 부패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검찰과 경찰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을 줄이지 못하면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라는 식으로 조롱을 듣는 한 정치보복을 반복할 위험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이나 수사기관을 잘 안다. 검찰 권력을 되찾는 작은 조직의 이익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부패를 막을 수사제도 전반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진정한 ‘검찰 개혁’, ‘경찰 개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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