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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선물

등록일 2022-05-18 18:23 게재일 2022-05-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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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최근 어린이를 비하하는 듯한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미숙한 초보자를 지칭하는 ‘~린이’라는 말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 초보자는 ‘주린이’, 요리 입문자는 ‘요린이’ 등으로 부르는 식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잼민이’로 폄하하기도 한다. 올해로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았지만 어린이에 대한 인식은 나아진 것이 없는 듯하다.

1923년의 첫 번째 어린이날에 방정환 선생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그의 목소리는 백 년이 지난 지금의 어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된 인격체인 아동을 ‘~린이’와 같이 비하하는 것에 대해 개선 의견을 낸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양성평등의 시각을 강조할 때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을 사용한다. 친환경적인 관점을 나타낼 때는 ‘생태 감수성’이란 용어를 쓴다. 그렇다면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기 위해서 ‘동심 감수성’이라는 말을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채널A에서 방영되고 있는 육아 예능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는 동심 감수성으로 많은 가정에 힐링을 주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오은영 박사는 아동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서 눈높이 상담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미혼인 2030세대에게도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안정했던 유년기에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금쪽이 스토리’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치유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아동문학가인 폴 빌라드는 ‘이해의 선물’이란 단편소설에서 동심 감수성을 잘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어린 주인공인 ‘나’는 버찌씨 여섯 개로 사탕을 사려고 한다. 사탕 가게 주인인 위그든 씨는 사탕을 공짜로 주고 2센트의 거스름돈까지 내준다. 돈의 개념을 모르는 순진한 동심이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어른이 되어 열대어 가게를 차린 주인공은 동전 몇 개를 내밀면서 값비싼 열대어를 주문하는 어린 남매를 만난다. 주인공은 위그든 씨가 물려준 유산을 떠올리며 2센트의 거스름돈과 함께 열대어를 남매에게 선물한다.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이해의 선물이 현재로 소환된 것이다.

금년은 어린이날 100주년과 함께 성년의 날 50주년을 함께 맞은 뜻깊은 해이다. 성년의 날은 성숙한 사회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 주기 위해 1973년에 제정되었는데, 1985년부터 오월 셋째 월요일에 기념하고 있다. 성년이 된 청년들이 저마다 이해의 선물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갖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할까 생각해 본다.

이해의 선물은 부모나 스승이 주기도 하지만, 소설에서처럼 ‘누구나’ 베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해와 배려를 청소년기에 한 번이라도 경험했느냐일 것이다. 이해의 선물은 받아 본 사람이 다시 전해 줄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다. 어린 세대에게 평생 간직할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기성세대의 고민이 깊어지는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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