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국내적으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반지성주의”라고 언급했다. 일부 언론에서 ‘반지성주의라는 낯선 단어가 불쑥 등장했다’고 빈정댔지만, 이 취임사를 들은 많은 국민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나는 반지성주의라는 단어만큼 지금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성주의가 ‘논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사회적 현안해결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 사회에 지성주의가 산산조각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대도시는 물론, 산골마을까지 전염병처럼 번진 반지성주의는 주로 대선후보 캠프 안팎에서 비롯됐다. 권력을 노리는 지식인들이 여야 후보 캠프에 대거 참여해서 우리사회의 공론장을 이성이 지배하는 소통의 장이 아니라 감정이 판치는 증오의 장으로 변질시켰다. 그들은 합리적인 논리 전개로 민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짧고 기억하기 쉬운 선동성이 강한 말로 대중을 휘어잡았다. 이로인해 생겨난게 팬덤정치다.
일부정치인의 팬덤정치는 SNS (트위터, 카카오톡, 페이스북)를 극도로 오염시켰다. 무조건적 충성심을 가진 팬덤은 온라인 좌표 찍기, 게시판 댓글 도배, 특정인을 겨냥한 문자 폭탄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이 때문에 SNS는 상대 당과 특정 인물들에 대한 광기 어린 독설과 막말, 근거 없는 데이터 등이 난무했다.
이재명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14일 그의 열광적인 지지자 모임(개딸)에 대해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행태라고 생각한다. 참 많은 개딸, 양아들. 개이모, 개삼촌, 심지어 개할머니까지 함께 해 주셔서 큰 힘이 난다”고 말했다. 팬덤정치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도적으로 일축한 발언으로 보인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정권 초기부터 민주당 안팎에서 문빠로 불리는 팬덤의 문자폭탄이 당 안팎의 건전한 비판 기능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를 ‘양념’이라며 묵인했다. 그는 지난 15일 경남 양산 사저 주변에서 보수성향 단체들이 집회를 하자 “반지성이 시골마을 평온을 깨고 있다”며, 듣기에 따라서는 윤 대통령이 언급한 반지성주의를 비웃는 듯한 말을 했다.
나는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상대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반지성주의를 언급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반지성주의가 진실을 왜곡하고,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해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현안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 진영 대결, 팬덤정치, 편가르기 등으로 구체화되는 반지성주의를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윤 대통령에게 가장 결핍된 언어가 지성”이라며 되받아 쳤지만, 반지성주의가 우리사회의 국민통합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