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반대 국민청원에 답변하면서 “많은 비용을 들여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꼭 이전해야 하는 것이냐”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을 직접적인 화법으로 비판한 것이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새 대통령을 이렇게 비판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과거에는 듣도 보도 못했다. 청와대는 “임기말 없는 대통령으로 끝까지 일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야당에선 “권력의 뒤끝이 대단하다”는 말이 나왔고, 대통령직 인수위는 “남은 임기동안 국민께 예의를 지켜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퇴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정권을 인계하는 쪽과 인수받는 쪽이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갈등을 노출하고 있다. 양측은 대선직후 첫 회동 일정조율 문제, 집무실 이전 예비비 승인 문제, 감사원과 중앙선관위원 인사권 문제 등을 두고 충돌을 거듭해왔다. 새 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신구 권력의 대치 전선이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어서 시민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대단하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히긴 했지만, 퇴임 후에도 정치적 메시지를 계속 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SNS팔로어 수 200만명을 자축하며 “이제 퇴임하면 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이야기로 새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고 언급한데서, 그의 팬덤정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문 대통령의 공세적 메시지는 ‘문빠’를 중심으로 한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팬덤정치가 우려되는 부분은 팬덤의 극단적인 지지가 국론을 분열시키는 매우 비이성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현 집권당 원로들도 “문재인의 문빠 정치가 진보세력을 망친다. 강성 지지층에 빠지면 중도, 혹은 대중을 외면하게 된다”며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과열된 범정치권의 팬덤문화로 인해 우리사회는 각계각층의 반목과 질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무조건적 충성심을 가진 팬덤은 온라인 좌표 찍기, 게시판 댓글 도배, 특정인을 겨냥한 문자 폭탄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그 여파가 이제 진영싸움을 넘어서 대선불복 단계로 치닫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비상시국이다. 경제의 불확실성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정치권이 한 몸이 돼 위기극복에 나서도 현 상황을 타개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 분열을 걱정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어떤 진영에 속하든 지금의 상황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맞다. 팬덤 뒤에 숨어서 좌표를 찍거나 충동질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우선 가장 정신을 차려야 할 사람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과 국정철학이 다르더라도 속으로 삭이고 윤 당선인이 순조롭게 정권을 인수해 나라를 안정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게 순리다. 윤 당선인과 인수위측 인사들은 물러나는 정권을 과도하게 자극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