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선보인 인사에 감동이 없다. 윤석열 당선인은 “능력과 인품을 겸비해 국민을 잘 모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능력주의’를 인사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간단치 않다.
윤 당선인은 “공동정부라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함께 찾아서 임무를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식의 내각 할애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관심을 보인 보건복지부 장관에도 정호영 후보자를 내정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40년 지기’에 대한 ‘의리 인사’다. ‘아빠 찬스’ 의혹도 제기됐다.
정권 교체의 가장 큰 배경이 ‘공정’이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내내 정권 교체 여론이 절반을 넘었던 것은 ‘공정’ 가치를 훼손한 ‘내로남불’ 탓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를 2년이 넘도록 끌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조국 장관을)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도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의혹만으로 교체하라는 건 사실 무리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정 후보자의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의혹을 검증할 책임은 임명권자에게 있다.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면 결국 임명권자가 짐을 떠안아야 한다. 조국 전 장관의 의혹은 법원이 사실이라고 확정했다. 문 대통령이 개인적 ‘마음의 빚’에 얽매여 망설이다 ‘20년 집권론’은커녕 ‘10년 주기설’도 채우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당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정부다. 문재인 정부가 ‘최순실 사건’의 충격으로 정권을 거저 주운 것과 비슷하다. 그럴수록 민심을 잘 살펴야 한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민심이다. 정호영 후보자에게 쏟아진 의혹은 조국 전 장관의 경우와 너무 닮았다는 게 부담이다.
박근혜 정부를 뒤집는 결정적인 방아쇠는 최순실 씨 딸의 대학 입학 특혜 의혹이었다. 공정 문제를 건드려 젊은 층이 일어섰다. 전 국민이 국정 농단 의혹을 ‘내 문제’로 실감하게 됐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조국 전 장관 의혹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반성하지 않으면 동정심을 가진 사람조차 돌아선다.
그 덕분에 정권을 잡은 윤석열 정부도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혹이 제기되면 바로 공직 후보자를 교체했다. 그러했기에 후보자의 도덕성이 정권에 부담을 주지는 않았다. 정 후보자는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상당히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느냐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면 억울해도 그만둬야 한다. 그게 정 후보자를 발탁해준 윤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 야당이나 언론의 문제 제기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로 검증하고, 책임을 물을 때 정권의 도덕성이 유지된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제도다. 어떻게 내리 세 번의 정권에서 비슷한 의혹이 불거지나. 전임 정권이 민심을 잃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일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의 첫 번째 인사를 위해 철저히 검증해도 막지 못한다. 정 후보자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정도면 상류층의 고질적인 적폐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일반 서민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좁은 진학과 취업의 문 앞에 선 젊은이들이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도 않은 봉사활동을 했다고 증명하고, 쓰지도 않은 논문을 썼다고 이름을 올리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정 후보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기 싫어서 포기하는 건가. ‘돈도 실력’이고, ‘아빠 찬스’ ‘엄마 찬스’도 실력이라고 인정하고, 좌절해야 하는가.
입시제도는 흙수저가 계층 상승할 유일한 사다리다. 사교육이 판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복잡한 제도들이 결국은 ‘찬스’를 위한 샛길로 이용된 꼴이다. 최순실, 조국, 정호영 씨의 의혹이 사실이건 아니건,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가 개입할 여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겨우 남은 이 사다리마저 걷어차지 말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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